오피니언

[칼럼] 바벨탑과 오순절, 불통혼잡과 소통질서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 한국신학아카데미 자문위원)

바벨탑 설화의 메시지는 문명의 오만과 수직질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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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구약 신학자들에 의하면, 창세기서 50장은 크게 설화적 원역사(原歷史, 1장-11장)와 현실적 구원사(救援史, 12장-50장)로 구별한다. 원역사란 신화와 현실역사가 뒤섞여져 있고, 뿌연 안갯속을 보는 것처럼 인간의 역사 이성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오지 않지만, 인간사 세상만사의 원형적 설화들(archetypal saga)이다. 창조 이야기, 에덴동산 이야기, 타락 이야기, 노아 홍수 이야기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에 비하여 아브라함 소명 받음(창12:1)으로부터 시작되는 현실적 구원사는 인간의 역사 이성 시계지평(視界地坪) 안에 들어오는 역사이다. 아브라함은 주전 약 1,800년 경(BC. 1880),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한 고대 바벨론제국 시대 유랑하던 아람 사람 유목민 족장이었다(신26:5-9). 창세기 편찬 기록자는 원역사 설화의 마지막을 '바벨탑 설화'로 마감한다. 바벨탑 설화를 통하여 성경이 전하려는 근본 의도가 무엇일까?

탁월한 구약 성서학자 클라우스 베스터만(C. Westermann)의 지론에 의하면, 바벨탑 설화의 핵심 의도는 다음과 같은 충고라고 주석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한계선 안에서만 자신의 인간성을 성취할 수 있다. 그 한계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깨뜨리려는 충동과 교만은 개인과 집단에게 치명적 위험을 초래하고 만다"(「창세기」주석서, 134).

보다 힘세고 큰 것을 추구하려는 본능에 가까운 인간성의 충동은 니체 철학에서 '권력에로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표현되고,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쾌감원리에 따라 욕망을 충족하려는 무의식적 리비도 분출로서 나타난다. 종교심리학에서도 거대한 것을 숭배하는 타이타니즘(Tatanism)으로서 나타난다. 고대 피라미드 축조 이후 현대에도 100층 이상의 고층 건물 짓는 경쟁이 뉴욕시나 두바이 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총대를 가슴에 메고서 군홧발 맞춰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독일 나치군대나 북한 인민군 군대 행진, 수천 명 집단체조와 수령지도자에게 광기 어린 열렬한 박수로 환호하는 정치적 우상숭배 열정은 모두 바벨탑 설화와 관계된 현상들이다.

바벨탑 설화 본문을 보면 "또 말하되 자, 성(城)과 대(臺)를 쌓아 대(臺)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 4)라고 집합적 인간이 서로 마음다짐 했다는 것이다. 바벨탑 축조건물은 자연석 채석장이 가까운 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창11:2), 그리고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는"(창11:3) 건축자료 제작 기술을 터득한 도시 문명 형성단계임을 암시한다. 기술이 진보되면서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한히 확장하려는 자기 절대화 충동이 강하게 발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축조하려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축조방식처럼 맨 밑바닥부터 수직 방향으로 쌓아가는 거대한 건축공사가 되고, 거기엔 일사불란한 명령 하달의 감독지휘체계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언어 통로만 작동하게 된다. 인간무리의 협동 관계 형태는 명령과 지시 하달에 복종하는 수직관계가 되고, 대화적 쌍방향의 수평관계일 수 없게 된다. 자발성과 개개인의 인격성이나 창의성이 묵살되고, 인간노동은 수단 도구로 전락된다. 점점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건축물의 위엄(威嚴)과 노역자의 자기 존재 정체성을 일치시키고, 스스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위로를 삼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신의 형상'이 꽃피려면 마주 바라봄, 말하고 들음, 돕고 도움받음, 자발적 신명

바벨탑 설화를 겉으로 표현된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질투심 많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 집단 무리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대는 인간 족속의 교만한 행태가 맘에 안들어 언어를 혼잡케 하고, 굳게 뭉쳐 집단행동을 하는 혈연적 인간관계 결속을 흐트려 버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바벨탑 축조하던 무리들이 의사소통이 안되고 분란이 일어나서 건축을 중단하고 흩어진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그렇게 된다. 그러나, 바벨탑 이야기는 '설화' 형태를 띤 인간 행위의 원형적(元型的) 심리 본성을 '여호와 신의 직접 개입' 형식이라는 문학적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고 무리가 흩어진 이유는 외부에서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고 집단 무리 안에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인간이란 존재가 건축 기술을 발휘하는 기계가 아닌 이상, '하나님이 형상'을 지닌 영물, 인격체, 자유인, 우주혼인데 그런 인간 본성의 핵심적 본질이 오랫동안 억압되고 훼손된 것에 있다. 초창기에는 일사불란한 집단행동을 보이면서 능률성과 효능성을 나타내지만 어느 임계점에 이르면, 소통은 불통이 되고 일꾼들은 윗사람 눈치만 보고, 조직체 안에 상호불신과 각자도생의 무자비한 현실이 드러난다. 자율성, 함께 일하는 신명나는 기쁨, 자기조직화 하는 창조적 역동성은 살아지고 거대한 '병영집단'처럼 되고 만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 형상'이 구체적으로 꽃피어나려면 4가지 필수 조건이 인간관계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서로 인간으로서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바라보는 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는 진지하게 서로 말하고 듣는 행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한쪽에서만 말하기를 독점하고, 다른 쪽에서는 듣기만 하거나 받아서 메모만 하는 환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 꽃필 수 없다. 셋째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 또 받는 쌍방적 주고받음이 일어나야 한다. 시혜만 베푸는 임금님이나 구걸만 하면서 받기만 하는 거지에게 '하나님 형상'은 꽃피지 않는다. 마지막 넷째 조건은 이상의 일들이 자유로운 자발성과 기쁨이 동반되는 신명나는 것이라야 한다. 도덕적 책임성, 율법적 당위성, 직책상 마지못해 하는 시늉으로서는 안된다. 바벨탑 공사가 중단되고, 소통이 안되고, 집단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인간 본성 실현 조건이 철저하게 무시되거나 억압되었기 때문이다.

오순절 사건의 핵심은 다양성과 일체성이 동시에 살아나는 언어소통

교회의 시작은 오순절 절기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예수 제자 공동체 안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행2장). 인간적으로 두려웠고 겁이 많아서 생명 보존을 위해 지방으로 피신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시 모여 과감하게 "예수의 십자가 죽임당함과 하나님이 일으키신 예수 부활"을 두려움 없이 전한다.

오순절 사건을 보도하는 사도행전 기자는 총 47절로 구성된 사도행전 제2장을 세 가지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의 중요성과 의미를 갈파한다. 첫째 단락은(행12:1-13) 오순절에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성령 은사 방언으로 사도들이 말하는데 청중들은 각자 자기 나라 지방 언어들(방언들)로서 알아듣는 기이한 언어소통 사건이 일어난 이야기를 전한다. 둘째 단락은(행2:14-42) 이 세상을 향한 최초의 선포설교를 베드로가 행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전함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무리들이 발생하는 이야기이다. 셋째 단락은(행2:43-47)은 복음 안에서 새로운 인류공동체로 결실을 맺어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듭난 사람들의 "개벽"된 삶의 모습을 전한다. 재산과 소유의 양극화가 극복되고, 사귐과 기쁨의 찬미가 되살아나고,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는 새로운 생명공동체가 역사 속에 출현하는 이야기이다.

세 단락으로 구별된 특이하고도 놀라운 오순절 사건 중에서 특히 '언어의 소통'에 관하여 주목하기로 한다.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 혹은 '방언들'이라고 우리말 성경에 번역된 글자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반적 언어학에서 말하는 지방어, 지역 언어, 쉽게 말해서 외국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강렬한 임재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들려나오는 비정상적 '언어발음 현상'을 말한다. 베드로와 열두 사도들은 후자의 의미로서 '방언'을 말했는데, 그 무렵 예루살렘에 모였던 각 지방,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국어로서 이해하게 되는 기이한 '언어소통 현상'에 직면하여 놀라 어리둥절하고 심지어 베드로 등 갈릴리 촌놈들이 '낮술에 취하여 횡설수설하는 것 아니냐?'고 조롱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사도행전 제2장의 오순절 사건을 전하는 근본 메시지가 들어있다. 부패해가고 변질되어 망해가는 바벨탑 이후 인류문명 역사 속에, 새로운 생명소생 물결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다. 그것은 언어불통과 더 강해지고 높아지려는 상향적 타이타니즘 숭배신앙 방향이 아니다. 언어소통과 서로 나눔과 작은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삶의 질서 탄생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할 일은, 성령강림으로 인해 다양한 방언들(언어들)을 폐기하고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Unity in Diversity)가 이루어지는 삶이 현실화되었다는 점이다. 대화 형식의 외형적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맘과 맘이 통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구촌이나 한국 사회의 현상은 현재 바벨탑 붕괴 현상을 보인다. 국가와 국가, 정부와 국민, 정당과 정당, 사회 계층과 계층, 세대 차이 간에 소통이 안되어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오순절 성령 바람이 지구촌, 한국 사회, 교계에 불어와야 한다. 다시 환상을 보고 희망의 꿈을 꾸는 '개벽'이 이뤄져야 생존가능한 인류공동체로서 재탄생할 것이다. 아니면 언어혼란과 불통으로 멸망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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