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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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출애굽기 4:10-15, 고린도후서 12:6-10, 누가복음 14:7-11

설교문

새해 달력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빨간 날은 며칠일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니 주일(일요일) 외에도 붉은 숫자로 인쇄된 국경일들이 눈에 띕니다. 국경일이 아니더라도 날짜 밑에는 각종 기념일 명칭이 깨알같이 쓰여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기념하는 날들을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념일은 개인의 삶에도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생일입니다. 생일 아침에 누군가 끓여주는 미역국 한 그릇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설사 내가 내 생일을 깜빡 잊어버려도 누군가 깜짝 파티로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가도 불러주고 선물도 한다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 듭니다. 요즘 젊은 연인들은 처음 만난 날 뿐만 아니라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도 잘 기념하더군요.

이렇듯 인생의 기념일은 삶을 기쁘게 해주고 활력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념일에 중요한 게 하나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기념일'입니다. 우리 인생에 성공을 기념하는 날은 있어도 실패를 기념하는 날은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광복절이 며칠인지는 알아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경술국치일이 며칠인지 (8월 29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잊어버리려고만 하지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념하지 않는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사실 인생과 역사라는 학교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교사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9장에는 모세가 그의 형 아론을 제사장으로 섬기도록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접어든 이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聖幕)을 완성한 후의 일입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은 제단으로 가까이 가셔서, 형님과 백성의 죄를 속하도록,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레위기 9:7, 새번역)

모세는 아론에게 제단으로 '가까이 가라' 했습니다. 아론은 제단에 가까이 가는 걸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는 단지 자신감이 부족했던 사람이었을까요? 모세는 흥미롭게도 이렇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은... 먼저 형님 자신의 죄를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다음 백성의 죄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레위기 9:7, 현대인의 성경)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론은 단순히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대제사장의 직책을 맡기기에는 염두에 두어야 할 특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높은 산에 올라 오래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지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로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사건의 전모는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아론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낸 이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소식이 없소.' 그러자 아론이 그들에게 '여러분의 아내와 자녀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를 빼어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였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가져오자 아론이 그것을 다 녹여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때 백성들이 '이스라엘아, 이것이 너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너의 신이다.!' 하고 외쳤다. 아론은 이것을 보고 금송아지 앞에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명절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다음 날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불로 태우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다음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난잡하게 뛰놀았다."(출애굽기 32:1-7, 현대인의 성경)

엄청난 일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에게 금 장신구를 바치라고 제안한 사람도, 그것들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제단을 쌓은 사람도 아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을 대제사장이 되기에 부적격의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는 책임도 질 줄 모르는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모세가 이 일로 아론을 나무랐습니다. "도대체 이 백성들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형님은 그들이 이와 같은 무서운 죄를 짓도록 하였습니까?"(출애굽기 32:21,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아론이 어떻게 답변하는지 들어보십시오. 참 가관(可觀)입니다. "그들이 금을 나에게 가져오더군.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넣었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어."(출애굽기 32:24, 현대인의 성경) 이런 걸 요즘 말로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 아론, 성서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비겁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람에게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가장 거룩한 역할을 맡기는 걸까요?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은 제단으로 [가까이] 나아가... 먼저 형님 자신의 죄를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다음 백성의 죄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모세는 아론에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형님, 왜 부끄러워합니까? 형님이 선택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모세는 단순히 아론에게 '너도 잘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게 아닙니다. 모세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지금 '당신이 선택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죄를 속하는 것입니다. 속죄일(Yom Kippur)에 용서를 구하는 게 그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아론이 선택된 이유가 나옵니다. 아론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압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도 잘 압니다. 아론은 누구보다도 회개와 속죄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 날마다 자신의 비겁함과 무책임함을 통감하며 죄의 얼굴을 씻고 깨끗하게 되려고 몸부림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론이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 게 이제 맡게 될 이 역할에서는 가장 큰 강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모세 자신도 그와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파라오 앞에 가서 당당히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라 말하라 했을 때 모세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듭해서 거절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애굽기 4:10) 모세는 자신이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 곧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한 자'(현대인의 성경)라고 강변합니다.

한 번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재차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나가게 하라고 말하라 하셨을 때 모세는 다시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않았는데 [파라오]가 어찌 내 말을 듣겠습니까?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자입니다"(출애굽기 6:12)라고 거절합니다. 두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나는 여호와이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을 너는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전하라" 하셨을 때 모세는 또다시 여호와께 "나는 말을 잘 못하는데 [파라오]가 어찌 내 말을 듣겠습니까?"(출애굽기 29)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모세에게는 언어장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가 될 수 없는 최고의 실격 사유였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뽑겠습니까. 그런데 모세가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代言者), 즉 하나님 말씀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의 생각을, 자기의 목소리를 훌륭한 언변으로 발표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를 통해 선포되는 것입니다.

웅변으로 군중을 사로잡는 사람들은 성서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모두 자신의 말하는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웅변으로 군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들은 종종 폭군이거나 독재자들입니다. 지상 최고의 웅변자는 아돌프 히틀러 아니었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말을 힘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군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나 혹은 은유적으로나 말을 더듬는 사람, 즉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기에 말하는 사람, 특히 군중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지만 재앙으로부터 스스로 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을 담대하게,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십니다. 모세가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윈스턴 처칠은 훌륭한 연사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혀 짧은 발음과 말더듬증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정치인이 되기에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둘을 다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처칠은 연설을 할 때마다 밤을 새워 준비했습니다. 모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했기' 때문에 연설할 내용을 미리 신중하게 생각하고, 사전에 작성하여 수시로 고치고, 또 마지막 순간까지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말이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가능한 한 짧은 단어를 사용했고, 멈춤과 침묵을 극적으로 삽입했으며, 거의 시적인 리듬을 이용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훌륭한 연설가가 되었고, 그의 연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라디오를 통한 그의 연설을 영국 사람들의 혼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칠을 보고 그는 "영어를 동원하여 전투에 투입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타고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론 역시 타고난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지도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적격 인사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약함과 실패와 죄를 깊이 의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 앞에서 날마다 괴로워하고 씨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날마다 자신의 죄와 실패를 고민하던 다윗이 무어라 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느니라."(시편 51:1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예배)은 '찢겨진 심령'(새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은 '겸손하게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현대인의 성경)입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잘났다고 오만해질 때 오히려 화(禍)를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19)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27-28, 공동번역)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잘났고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명기 6:7) 이스라엘은 소수자였기에, 약자였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또 성서가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땅끝에서 이끌어내고 땅 모퉁이에서 불러 내어 너희를 내 종이라고 하였으며 너희를 택하고 버리지 않았다."(이사야 41:9,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은 땅의 끝에, 즉 모퉁이에 있던 보잘것없는 존재였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하고 가난하고 소수인 이들을 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이 비극을 겪은 후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삶을 바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실패를 당한 후 그 실패를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실패감을 극복하도록 돕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만해집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는 것보다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예수께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누가복음 14:11, 공동번역)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와 어둠과 실패 앞에서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 '겸손하게 뉘우치며 회개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우리를 믿으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고린도후서 12:9, 공동번역)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고린도후서 12:10, 공동번역)라고 했던 겁니다.

"믿음이란 / 과거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 매일매일 눈에 띄더라도 / 하느님께서 그런 상처들을 통해 / 내 삶을 향한 그분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어가심을 바라보는 것"(작자 미상, <믿음이란>)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J.R.R. 톨킨,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라고 했습니다. 헤매본 사람만이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당신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이신 예수께서 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실패를 기념하십시오. 그 실패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 매일매일 눈에 띄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상처들을 통해 나를 향한 그분의 완전한 계획을 이루어가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나의 믿음 약할 때 주가 붙드[시고]... 나의 사랑 식을 때 주가 붙드[시며]... 나를 귀히 보시고 항상 붙드[실]"(찬송가 374장) 것입니다.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께서] 늘 보호해 주실 것"(찬송가 310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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