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세계성찬주일] 그의 사자를 통하여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말라기 4장 1-6절

설교문

[세계성찬주일에 다시 새기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본질]

지난 주일은 세계성찬주일(World Communion Sunday)이었습니다. 긴 추석 연휴로 우리 교회는 지난 주일을 한가위 감사주일로 지켰기에 우리는 오늘 세계성찬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세계성찬주일은 1936년 미국장로교회에서 시작했습니다. 1940년 미국교회협의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가 교회력에 포함하였고, 이후 1982년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WCC) 모임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교회들이 10월 첫째 주일을 성찬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하고 성찬 예식서를 내놓음으로써 전 세계의 교회가 함께 지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세계 교회가 모두 인정하는 신앙고백서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시며 '빛 중의 빛'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 신경에 교회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표지가 나옵니다.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교회"라고 해서 '거룩함'과 '보편성'만을 언급하지만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두 가지를 더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세계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의 하나됨과 사도적 전승이 더 포함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세계성찬주일을 맞아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면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주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식탁을 떠올리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감당하셨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회상합니다. 동시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시고, 전 세계 신앙인들을 평등한 잔치 자리에 모두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다른 언어, 다른 전통,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전 세계 24억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한마음으로 주님께서 베푸신 이 축제의 잔치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의 한 백성이며, 사도들의 전승을 이어 거룩한 성령의 세계적 공동체의 일원임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포함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온전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를 받고 세상으로 파송되는 것을 하나의 틀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모임'과 '만남', '보냄'의 형식을 지닙니다. 만남 예전에서는 '기록된 말씀'인 성서를 읽고, '선포된 말씀'인 설교를 들으며, 성찬식을 통해 '살아계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과 성찬이 온전히 들어가 있을 때만 우리는 그것을 예배라고 부르고, 성찬이 빠지면 예배가 아니라 모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주보를 보면 모임 안내에 주일예배와 모임, 기도회 및 성서 배움터라고 되어 있고, 주일예배를 제외한 나머지 모임은 주일 오후 모임이나 화요기도회, 수요기도회, 월삭기도회, 떼제기도회로 되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매주 성찬식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봉헌과 감사기도가 성찬을 대체합니다.

봉헌이라는 것은 바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 공손히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를 통해 자신을 내어주셨고, 또 성자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성찬과 우리가 주님을 위해 마련하는 봉헌이 연결됩니다. 실제로 드리는 예물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일부이지만, 그 뜻은 우리의 삶과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자신 전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가?]

"모임, 하나님과의 만남, 세상으로 보냄"이라는 그리스도교 예배의 틀 중에서 역시 핵심은 예배를 통해 실제 하나님을 만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주일 아침 예배당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교인 만나기 위해, 가족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간 세상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풀려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또는 상담을 받으려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를 통하여 또는 교회의 모임을 통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도 일어나고,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깨달음도 얻고, 믿음의 식구들과의 귀한 만남과 사귐도 이루어 지지만 이 모두는 부차적입니다. 본질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만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한국의 많은 교인이 바로 이 부분을 잊은 채 교회에 나오고 예배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도록 교회를 다녀도 신앙 성숙이 없는 것이고, 그렇게 교인들이 많은데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 예배 절차 하나하나 뜻과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생명사랑교회 예배의 특징과 당부]

예배를 시작하는 초입에 제가 가장 먼저 나와서 회중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여러분 모두를 대신하여 예배 위원들이 예배를 진행하겠다는 것을 허락받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의 예배가 교회력의 진행 중 어디쯤이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예배하는지를 알려 드림으로써 예배를 준비하도록 합니다. 징을 세 번 치는 것으로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데, 이때 여러분은 성부, 성자, 성령을 생각하시면서 예배의 대상을 분명하게 확인하시고, 동시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 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예배에는 무려 5번의 묵상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징을 친 후, 목회기도 후, 설교를 마치고 설교자가 기도한 후, 감사기도 후, 축복기도 후입니다. 이때 오르간 반주가 흘러나오는데, 여러분 모두는 이 침묵을 통해 예배에 더욱 깊이 젖어 들도록 각 시간에 알맞은 묵상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는 오늘의 교회력과 예배의 주제를 떠올리며 예배가 온전히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려지길 기원합니다. 목회기도 후에는 드려진 기도를 되새기며, 예배를 드리는 온 성도들과 함께 마음을 모으며, 미처 드리지 못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설교 후에는 오늘 나누어진 하나님 말씀 속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을 묵상하고, 일주일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묵상합니다. 감사기도를 마치고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이미 주신 모든 것과 앞으로 주님께서 이루실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드리면 좋을 것 같고, 마지막 축도 후에는 오늘 예배 전체를 마음에 담고 이제 다시 주님께서 보내신 삶터와 일터에서 진정한 예배가 시작되도록 다짐합니다. 그래서 축복기도 후 순서를 "말씀담기"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 다섯 번의 묵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말씀을 되새긴다면, 우리 믿음이 더욱 단단해 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교회의 예배가 지니는 특징 중에 하나는 평화의 인사 시간에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 덕분에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한 분들은 우리교회가 매우 따뜻하고 가족적이며 환대하는 교회라고 느낍니다. 그러니 여러분, 평화의 인사 시간에 여러분 모두 최소 5명 이상의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특히 잘 모르는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라 서로 잘 알 것 같지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있고, 1년 내내 신앙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새로운 교우들이 많이 오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새 교우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우리교회 공동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따뜻한 배려를 담은 인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에서 또 하나의 조금 독특한 지점은 신앙고백이 말씀과 성찬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는 신앙고백을 모임 예전에 배치합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들은 뒤에 신앙고백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이 성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앙고백을 예배의 앞부분에 배치할 경우,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배가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신앙고백의 확신이 적은 초신자나 태신자들, 그리스도교 진리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방문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과 생명사랑신앙고백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골고루 사용합니다. 이것은 각각, 그리스도교 교회의 전통과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구절 하나하나의 뜻을 새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약 10회 정도 성찬식을 합니다. 성찬식 또는 성만찬 예식이라고 두 가지로 부르는데, 성찬(εὐχαριστία)은 감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성만찬(The Holy Communion)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식탁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하나 되는 경험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성(만)찬(예)식은 말씀 나누기와 함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었는데(눅 24:13-35), 그때 제자들은 눈이 뜨여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즉 우리 모두는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생생하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가톨릭에서는 빵과 잔이 실제로 예수님의 몸이라 생각했고, 루터는 본질에 있어서 빵과 예수님의 몸이 다르지 않다고 했고, 깔뱅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주님의 만찬이야말로 성령의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어지는 통로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이 갖는 의미를 올바르게 알고 행해야 합니다.

첫째, 성찬은 '감사의 만찬'(Eucharist)이라는 명칭대로 예수님의 삶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감사하는 예전입니다. 둘째 성찬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러야 합니다(빌 3:10-11). 셋째 성찬은 나 홀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빵에서 나누어진 조각들을 먹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잔을 받습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모두 전 세계 교회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찬은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초청하여 행하신 나눔의 식탁임과 동시에 미래에 하나님께서 베푸실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식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지금-여기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 잔치에는 그리스도인들만 초청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는 그 어떤 소외나 배제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식탁에 나오려는 이들은 이념이나 피부색, 장애나 지역,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성별, 또는 성적지향과 인종으로 인한 그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라기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주님 앞에 나오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그 어떤 이유로도 거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주님을 거부하고, 미움과 혐오로 가득한 자들이 계속 악을 행하면서 주님의 식탁으로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용광로의 불길에 지푸라기가 살라지 듯 다 타 버릴 것입니다.

[외로움의 시대, 주님의 사자를 통하여]

"말라기"는 사람의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일 수 있지만, 동시에 "나의 사자"라는 뜻의 보통명사일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 1장 1절은 이렇습니다. "다음은 주님께서 말라기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신 말씀이다."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주님께서 그의 사자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신 말씀이다." 실제로 옛 그리스어 번역본은 후자로 번역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사자로 선택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무슨 말씀을 전하라고 하실까요? 지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외로움"입니다. 영국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실로 많은 사람이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오늘날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구에서 근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사유와 행동의 주체로 나섰고, 하나님 없이도 개개인이 스스로 자기 삶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가 현대사회를 "신 죽음"의 시대라고 진단한 것도 바로 한 개인이 모든 것의 주체가 되려는 근대 정신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신이 죽은 사회, 신을 죽여버린 인간이 맞이한 것이 바로 외로움입니다.

우리 사회도 서구의 물질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개화요 발전이라 생각하면서 기존에 지니고 있던 공동체적 사유와 관계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세상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소모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대신 디지털 매체들로 소통하고,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나 창세기가 우리에게 일러 준 대로 동물이 인류 아담에게 충분하고도 만족스러운 관계를 제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은 역시 사람 사이에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 될 때, 괜찮은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해야 합니다. 초월적 존재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되려는 사람은 참 자기를 찾기보다는 거짓 자아인 에고의 속임에 넘어가고, 결국 자신의 유한성 앞에서 무너지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유한성을 부인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히고, 남도 괴롭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제대로 자각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참 지혜를 얻는 사람만이 외로움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바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할 때 현대 문명의 질병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말라기 즉 당신의 사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씀도 바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는 이에게만 의의 태양이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지독한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과 공포, 분노와 혐오는 하나님의 빛 아래에서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매우 게으른 축구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산소탱크라 불리는 박지성 선수나 쉬지 않고 달리는 이재성 선수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자기 팀의 다른 선수가 뛸 때에도 이 사람은 뛰지 않고 거의 걷습니다. 경기가 한창일 때도 걸어 다녔기 때문에 이 사람은 많은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동료를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이기주의자라는 빈축도 사고, 축구 전문 기자 중 한 명은 이 선수가 뛰지 않고 슬슬 걸어다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번 멍하니 1분 이상 서 있고,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최악의 선수라고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펜들로 이 선수보고 더 뛰어야 하고, 많은 동료 선수들도 이 선수에게 "얼굴을 볼 수 없다." "넌 부끄럽지도 않냐?"는 등의 말을 하면서 더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 선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언젠가 공이 저한테 올 걸 압니다. 제가 흥분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요. 그리고 제가 서 있는 곳이 상대 팀을 타격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를 기다립니다. 결국 때가 오면 우리 선수들하고 같이 공이 올 걸 알거든요." 여러분은 이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로 이 선수는 현재 세계 최고의 현역 선수인 리오넬 메시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난을 쏟아 놓을 때, 유럽 최고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과르디올라 감독만이 메시의 진가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선수는 걸으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계속 좌우로 머리를 움직입니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그는 걸으면서 항상 일어나는 상황을 관찰 중이지요. 공을 관찰하고, 선수들을 관찰합니다. 그는 천재에요. 공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5분에서 10분이 지나면 그의 머릿 속에는 지도가 새겨지지요. 상대 수비수들의 약점을 간파하고, 어디에 틈이 나는지,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그는 정확하게 압니다. 저렇게 걷는 것, 저게 바로 제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저는 메시가 그렇게 체력을 낭비하는 것을 바라지 않죠. 메시가 마지막 20미터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요."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하나님 품 안에서 잠시 멈추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차분히 자기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세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집중해서 찾아보세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도 살피고, 어디에 틈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지 주님께 여쭈어보세요. 주님의 지도 없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체력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시길 빕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의 사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주님의 신호를 놓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의의 태양을 떠오르게 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힘을 기르시길 빕니다. 의로운 빛이 뿜어져 나올 때 그 광선을 받아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들을 치료하시길 빕니다. 더 나아가 그 광선을 반사하여 세상을 치유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빕니다. 남들의 비난을 신경 쓰지 말고, 세상이 강요하는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율법과 법도를 오롯이 지키며, 주님과 깊이 만나고 사귀시길 빕니다. 주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시어 여러분의 삶이 단단해지고, 여러분의 앞길이 탄탄대로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먼저 불러 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게 하여 주소서.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들리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우치시고, 보이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혼돈의 시대, 참된 믿음으로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소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예배하여 뿌리가 튼튼한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사자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주님의 비전을 우리가 함께 품게 하시고, 의로운 빛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에 우리를 한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만나고자 나온 생명사랑 믿음의 식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일렁이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평화와 위로가 우리를 감싸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드리려고 나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의 징표로 드리는 이 예물을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가난으로 하루가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그 때 우리가 드린 예물을 사용하여 주소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생명이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십시오. 그리하여 의로운 태양이 떠오를 때, 치유의 빛을 받아 모든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십시오.

* 축도

이제는

여러분들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나무가 자라고 계절이 변하는 동안 여러분을 붙잡아주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따듯한 기운으로 여러분들을 치유하고

언제나 여러분들을 응시하며

참된 평화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새롭게 피어나는 작은 꽃들의 싱그러움으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강한 능력으로 여러분의 그늘진 삶에 햇살이 피어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 감화가

어수선한 세상, 헛된 유혹과 시련에 휘둘리지 않고,

올곧게 주님의 길을 걸어가려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전국의 모든 성도들과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지금부터 영원까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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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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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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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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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