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살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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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에스겔 18:29-32, 고린도후서 7:8-11, 마태복음 3:7-10

설교문

'창조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 22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9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일에 초대됩니다. 올해 창조절 세계교회운영위원회에는 개신교와 정교회의 연합인 세계교회협의회(WCC), 루터교세계연맹(LWF), 가톨릭교회의 찬미하소서(Laudato Si) 운동, 성공회연합환경네트워크, 로잔/세계복음주의연합 창조세계돌봄네트워크, 장로교회들의 연합인 세계개혁교회연맹(WCRC), 세계감리회의, 유럽기독교환경네트워크, 그리고 ACT Alliance, A Rocha International, Christian Aid 등 세계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단과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창조절은 1989년에 동방정교회의 디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가 9월 1일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유럽의 교회들이 같은 날을 창조세계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했고, 2015년에는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로마가톨릭교회도 동참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9월 1일부터 10월 4일, 즉 생태수호 성인(聖人)인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까지 창조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림절 이전까지 연장해 약 3개월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창조절 자료집에는 특별히 '회개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가장 좋았습니다. 태평양교회협의회(Pacific Conference of Churches)의 총무인 제임스 바그완(James S. Bhagwan) 목사님이 지은 회개의 기도입니다. 탄소배출은 가장 덜 했으나 기후위기로 가장 큰 재난을 겪고 있는 태평양 섬들의 교회에서는 어떤 회개의 기도가 나왔을까요?

빛과 생명과 사랑의 하나님,

땅과 바다와 하늘의 하나님,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시고

풍성한 생명의 그물망을 엮어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당신 모습대로 빚으시고

태초의 물 위를 맴돌던 당신의 영을

저희에게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저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 맺어

하나님과 저희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거룩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생명의 그물망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사랑으로 엮으신 섬세한 생태계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저희는 주님의 생명 나무를 뿌리째 뽑아 통나무로 팔아넘겼습니다.

힘들게 땀 흘리는 노동을 잊고

당신의 바다와 강을 오염시켰습니다.

바다는 정의를 외치며 강은 공정을 요구합니다.

숨 쉬는 모든 것이 당신을 찬미하지 못하고...

모든 피조물이 고통에 신음합니다.

저희의 욕망은 커지고 돌봄은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자매요 형제인 피조물을

더럽히고, 망가뜨리고, 약탈하고, 착취했습니다.

폭염과 산불

혹독한 겨울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과 해수 온도 상승

더욱 극심해지는 사이클론, 태풍, 허리케인

그래도 저희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창조세계가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지만

저희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를 부르시어,

권력자들에게 진리를 말하게 하시고

우리의 공동의 집인 이 지구에 평화를 전하라 하십니다.

그래도 저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치유의 하나님...

저희의 무관심과 탐욕과 이기심을 씻어내 주소서.

회복시키는 생명수를 저희에게 주시어

절망의 사막을 희망의 오아시스로 바꾸게 하소서...

저희를 하나님 창조세계의 보호자로 다시 변화시켜 주소서.

하나님의 정의가 흐르게 하시어

저희를 하나님의 잔잔한 평화의 호수로 인도하소서.

그곳에서 모든 피조물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온 우주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오늘 우리 모두가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천 년 전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태 3:7-10)

요한은 예언자입니다. 예언은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예언자의 정직함이 바로 위대함입니다.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이번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데!'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년 여름은 이번 여름보다 더 더울 것이고, 내후년 여름은 내년 여름보다 더 더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습니다. 기후재앙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이 물었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코로나도 '임박한 진노'의 징후입니다.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 그리고 2019년 코로나가 모두 박쥐에게서 왔습니다. 주로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박쥐가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로 더워진 아열대와 온대 지방으로 많이 옮겨왔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의 남부와 라오스의 북부입니다. 지난 10~20년 사이에 약 40종의 박쥐가 이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열대 박쥐 1종이 보유한 바이러스가 평균 2.7개이므로 여기에 40종을 곱하면 지난 10~20년 사이에 온대 지방으로 새로 유입된 바이러스가 약 100종입니다. 그중 하나가 이번에 제대로 우리를 공략했습니다. 아직도 99종의 신종 바이러스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열대 박쥐는 계속 건너올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물었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깊은 얼음 땅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기후변화로 깨어나고 있습니다. 한타 바이러스, 탄저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만 년간 얼어있던 시베리아 땅의 평균 기온이 35도를 넘나들며 땅이 녹아내린 탓입니다. 탄저균 사상자가 나오고 순록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3만 년 전의 바이러스까지 깨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이 물었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곤충의 3분의 1이 멸종하고 있습니다. "만일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한다"라고 아인슈타인은 예언했습니다. 꿀벌은 식량 작물의 60~80%를 매개합니다. 사과는 90%, 아몬드는 100%가 꿀벌의 수분(受粉)에 의지합니다. 그런 꿀벌이 사라지면 상상하기 싫은 식량 대란이 옵니다. OECD 국가 중 식량 해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가 제일 위험합니다. 어느 순간 외국이 농산물 수출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반도체를 한 가마니를 짊어지고 가서 식량 한 톨 달라고 구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환경위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무신론(atheism)입니다. 바르톨로메오스 정교회 세계총대주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생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위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지구를 무신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태도가 본질이다"라고 했습니다. 태도는 단순한 형식이나 겉모습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속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갔을 때의 일입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 정조 임금과 한 나라의 개혁을 도모했던 사람이 '예수쟁이'라는 이유로 저 먼 땅끝으로 유배 갔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어느 더운 여름날 다산 선생이 의관정제(衣冠整齊)하고 무릎 꿇고 앉아 책을 읽으니 보다 못한 제자들이 읍소했습니다. '스승님, 누가 본다고 이 더운 여름날 버선발에 의관정제하고 책을 보십니까. 훌떡 벗고 누워 보시면 시원하고 책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다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다, 내가 성현(聖賢)의 말씀을 접하니 절로 무릎을 꿇고 의관정제하지 않을 수 없다.'

태도가 본질입니다. 의식(儀式)이 의식(意識)을 지배합니다. 사람들이 자연환경, 즉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보입니다. 그가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눈을 높이 들어 보십시오. 이 세상에 내가 지은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산천초목과 물과 공기, 모두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구 부수고 해치다니요. 그건 그 선물을 주신 분을 모독하는 겁니다.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그분이 계시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구라는 선물을 보전(保全)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의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신앙의 위기입니다. 기후변화라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영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어디에 파묻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게 아니었습니다. 가인이 무슨 짓을 하였는지 그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0) 그런데도 가인은 모른다며,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이냐'고 오히려 하나님에게 따졌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가인처럼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동료 피조물을 피 흘리게 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의 일입니다. 자기들이 범한 탐욕과 죄악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큰 잘못을 범하고도 그 결과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어이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답하십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29-32)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오늘의 재앙,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聽從)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외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마태 3:7-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내가 아브라함이 후손이니 당연히 아브라함에게 주신 생명과 구원의 언약이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 3:9)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는, 비유하자면, 좌회전이나 우회전이 아니라 유턴(U-turn)입니다. 가던 길이 파멸의 길임을 깨닫고 완전히 뒤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멈추지 않으면 영원히 못 멈춘다'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내일부터 잘 하면 되겠지' 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세상이 나빠지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업과 정부도 당장 눈앞의 이익과 경제성장 때문에 입으로는 기후위기를 말하면서 사실상 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잘못된 신학과 설교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보고도 두 손 놓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에 열심히 나갈수록, 설교를 열심히 들을수록 그에 비례해 환경에 관한 관심이 떨어진다는 조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참담한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지금 단행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2050년 탄소제로까지 한 세대도 채 안 남았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솔직히 환경에 관한 설교를 할 때마다 저는 후회하곤 합니다. 세상살이 근심 걱정 등에 지고 예배당에 오신 분들에게 또 다른 근심 걱정을 하게 하니 말입니다. '예수 믿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설교하고 싶고, 그렇게 하면 저도 인기 있는 목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해야 하는 설교자로서 때론 듣기 힘든 말씀을 드려야 하는 제 마음이 힘듭니다. 그런데 위대한 바울 사도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에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이전]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다."(고린도후서 7:8) 그 향락의 도시 고린도에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바울이 따끔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교인들이 마음 상했을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하고]...기뻐함은...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린도후서 7:8-9)라고 말합니다. 고맙게도,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감격해서 적습니다. 오늘 저의 설교제목이 나온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고린도후서 7:10-11)

바울은 세상에 두 가지 근심이 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 근심'이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를 뉘우치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작은 근심은 버리고 큰 근심을 품어라"라고 했다지요. 오늘은 우리가 잠시 세상 근심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잠겨 보면 어떻겠습니까. 요즘 하나님의 근심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공동기도문, 서재환 시인의 <걱정>이 요즘 왜 하나님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기고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하늘나라 하나님은 / 요즘 / 걱정이 많으실 거야. // 무거운 돋보기를 손에 들고 / 벌레 먹은 사과 같은, 복숭아 같은 / 상처 난 지구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 - 저런, 내 별 하나 못쓰게 됐군. / 쯧쯧쯧...... / 밤이면 손전등 달로 / 낮이면 손전등 해로 / 우리가 사는 모습 비추시며 / 맨 처음 만든 세상 생각하실 거야 // 지긋이 눈을 감고 / 이마에 깊은 주름 새기고 계실 거야."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근심을 조금만 덜어드리면 안 될까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근심하는 근심을 나도 근심하며 "벌레 먹은 사과 같은, 복숭아 같은 / 상처 난 지구를" 위해 기도하고 나와 내 후손이 살아갈 아름답고 깨끗한 세상을 다짐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로마서 8:18, 새번역)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로마서 8:20-21) 바울은 고난 중에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창조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죄악과 탐욕으로 얼룩져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당신의 창조세계를 갱신하시고 회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코로나로 인간의 경제가 속도를 늦추자 자연이 살아났던 일들을 말입니다. 코로나 이전 십몇 년 동안 푸른 가을 하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미세먼지로 꽉 찬 잿빛 하늘밖에 못 봤는데 코로나 와중에 우리는 갑자기 그 유명한 한국의 가을 하늘을 다시 보았지 않았습니까. 저 어릴 적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가을하늘은 세계에서 최고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또 기억하십니까? 인도 북부의 어느 마을도 대기가 맑아지자 장엄한 에베레스트산이 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물이 깨끗해지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돌고래가 돌아왔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회복력(resilience)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매일 78억 인류 전체가 일 년 내내 쓰는 총에너지의 1만 배나 되는 에너지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인간의 타락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새 태양이 뜨게 하시고 햇빛과 단비와 신선한 공기를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보존의 은혜'가 우리를 살립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은총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의 터전 지구가 생각보다 많이 아픕니다.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후재앙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 일이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인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우리가 해치고, 파괴하고, 멸종시키고, 숨 막히게 한 동료 피조물의 탄식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인정하는 정직한 마음을 찾으십니다. 또 세례 요한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요한은 단순히 회개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는 말은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라"(공동번역)라는 뜻입니다. 회개란 좌회전이나 우회전이 아니라 완전한 유턴입니다. 회개는 내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창조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동역자임을 깨닫고 그 삶으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근심을 내 근심 삼아 하나님이 지으시고 "좋았다"라고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신 이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지키고 돌보는"(창세기 2:15) 일입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후손이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이 언약의 말씀이 2023년 창조절을 시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기쁨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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