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2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육군 22사단 구타·가혹행위 자살 사건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임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19일 오후 4시 22사단 K 일병이 국군수도병원 외진 중 자살하는 사건을 공개했다.
임 소장은 K일병에 대해 "부대는 이미 7월 14일에 K일병과의 고충 상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였고, 7월 18일에는 '배려병사'로 지정까지 해놓고도 가해자들과 분리조차 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사망 당시에는 인솔 간부조차 없었다. 군이 참극을 자초한 것이다"라고 했다.
임 소장은 K일병이 구타 및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끝에 지난 14일 부소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보고했지만 부대가 취한 조치가 "K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하고 GOP 투입에서 배제한 것 뿐이다"라고 지적하고서는 "부대는 5일이 지나도록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에 피해자를 방치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
반성 없는 육군이 또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 육군 22사단 구타, 가혹행위 자살 사건 긴급 기자회견 -
지난 7월 19일 16시, 육군 제22사단(사단장 김정수 소장, 육사43기)에서 선임병으로부터 구타, 가혹행위를 당해온 K일병이 국군수도병원 외진 중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부대는 이미 7월 14일에 K일병과의 고충 상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였고, 7월 18일에는 '배려병사'로 지정까지 해놓고도 가해자들과 분리조차 시키지 않았다. 사망 당시에는 인솔 간부조차 없었다. 군이 참극을 자초한 것이다.
K일병은 2017년 4월에 부대로 전입 온 이후 지속적으로 선임병 수 명의 폭언, 욕설, 폭행에 시달렸다. 훈련 중에 임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폭언, 욕설을 듣거나, 갑작스럽게 '개새끼'라며 욕을 먹기도 하였고,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다. K일병은 훈련 중 부상으로 앞니가 빠진 상태였는데 선임병들은 이를 놀리며'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 하나 더 뽑히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라고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불침번 근무 중에는 목을 만지고 얼굴을 밀착해 쳐다보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희롱, 괴롭힌 적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K일병이 수첩에 남긴 메모에 쓰여 있는 것으로 추가 피해도 확인 중인 상황이다.
참다못한 K일병은 지난 7월 14일, 부소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부대가 취한 조치는 K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하고 GOP 투입에서 배제한 것뿐이다. 부대는 5일이 지나도록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에 피해자를 방치한 것이다.
K일병은 사망 당일인 7월 19일, 국군수도병원에 치과 외진을 갔다. 그런데 K일병을 인솔한 간부는 없었다. K일병은 소속 부대 동료와 함께 동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11시 경 치료를 받은 K일병은 동료를 기다리며 병원 7층에 위치한 도서관에 있다가 15시 30분 경 치료를 마친 동료와 함께 1층으로 내려온 뒤 "도서관에 두고 온 것이 있어 가져오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7층으로 다시 올라가 16시 경 열람실 창문을 통해 1층으로 투신해 사망하였다. 특별한 보호와 관찰이 필요한 배려병사로 지정해놓고 부대 밖에 인솔 간부 하나 없이 내보내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사고 이후 군은 대응 과정에서도 책임 회피와 사건 은폐 시도 등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주고 있다. 22사단 헌병대 수사관들은 유족들에게 사건 초기 브리핑을 하며 부대의 관리 책임을 '실수'라 표현하였다. 유족들이 망자의 유품인 유서와 수첩 등을 요구하자 수사 자료라며 거부하였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이마저도 제지하였다. 사건의 은폐, 축소 시도에 대한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사단장 이하 22사단 관계자 중 사과하기 위해 유족을 찾아오거나 연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족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장례절차와 비용에 관하여 설명하러 온 인사참모뿐이었다. 부대의 과오로 빚어진 사고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22사단은 2014년 GOP 총기난사사건, 2017년 1월에도 얼굴에 구타흔을 가진 일병이 휴가 복귀 직후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영부조리 대응의 기본 원칙인 피해자-가해자 분리조차 지키지 않았고 피해자를 방치했다는 것은 사단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지난 사건들로부터 아무런 반성도,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번 K일병 사망 사건은 막을 수 있었던 사고다. 피해 사실을 신고했음에도 피해자가 택할 길이 죽음 밖에 없는 상황을 부대가 조성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며 병영 내 부조리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 역시 취임 시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진 병영문화를 이끌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사고가 발생한 7월 19일에는 국정자문기획위원회에서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장병 인권 및 복무여건 개선'을 꼽았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육군은 또 다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 매 번 사건이 발생함에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군의 자폐증을 고치지 않는다면 국방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혀 처벌함은 물론, 반성 없는 황당한 부대 관리로 꽃다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김정수 사단장을 위시한 지휘관들의 보직을 해임하고 엄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 가해자를 즉각 구속하고 엄히 처벌하라.
- 육군 제22사단장 김정수 소장 및 대대장 김정열 중령 등을 보직해임하고 중징계하라.
- 군 당국과 수사기관은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유품을 유족들에게 반환하라.
- 육군 전사망심사위원회는 고인을 즉각 순직 처리하라.
2017. 7. 20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