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서울 인권헌장 파기 사태를 바라보며
김윤성·한신대 교수

입력 Dec 19, 2014 07:17 PM KST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추진하다가 반대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인권헌장 자체를 파기한 일이 세간을 뜨겁게 달궜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그 핵심에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놓여 있었다. 박 시장은 몇 달 전 미국 방문 중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를 문제 삼는 이들이 나오자 해명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발언을 사실상 취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시 인권헌장이 가결되고 그 선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그는 성소수자 인권조항을 문제 삼는 이들의 압력에 못 이겨 인권헌장을 스스로 파기했다. 성소수자들과 진보적인 사회 및 종교 진영 사람들이 시청 앞에서 연일 농성을 벌이자, 박 시장은 인권헌장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성소수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애쓰겠다는 두루뭉수리한 사과와 약속을 했고, 농성단은 비록 막연하나마 이 약속을 믿고 농성을 해산했다. 인권헌장은 이미 파기되었고, 농성단은 일단 해산했으나, 어쩌면 진짜 대립과 갈등은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서울시 인권헌장 파기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성소수자 반대 진영에서는 개신교가 유독 눈에 띈다. 물론 표면상으로만 보면 ‘일부’ 개신교인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결코 유별난 일부가 아니다.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식장에서 오물을 뿌리고, 세계 그리스도교인들의 초교파적 축제인 WCC 행사장에서 항의시위를 하며, 성소수자 축제 행렬을 가로막은 채 행패를 부리고, 서울시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난동을 부린 이들은 특정 교단이나 단체에 속한 일부 개신교인들이지만, 그들 뒤에는 신학과 교단의 차이를 넘어 보수주의 내지 근본주의로 똘똘 뭉친 거대한 한국 개신교계가 있다.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진보 교단 목회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두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이고 그 활동도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의 일일 뿐이다. 미약한 진보 교단들은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 침묵으로 내내 일관하고 있고, 거대한 보수 교단들은 예외 없이 똑같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충돌의 현장에 출몰하는 과격한 개신교인들은 결코 일부가 아니다. 그들은 한국 개신교인들 대부분을 대변하는 전위부대이자, 한국 개신교 자체의 상징이다.   
그런데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개신교만 운운하는 건 불공평하다. 다른 종교들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약자를 보듬는 파격적인 행보로 이목을 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조차도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서는 가톨릭 주류 보수 세력의 압력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개신교의 경우, 미국에선 일부이고 한국에선 대부분인 보수 진영을 제외하고, 적지 않은 진영에서 성소수자들을 보듬는 입장이 대세인 반면, 세계와 한국 가톨릭계에선 이런 기미조차 거의 없거나 지극히 미미하다. 전면에 나서는 행동부대는 없는지 몰라도, 성소수자 혐오에 관한 한 가톨릭계는 개신교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유교, 불교, 신종교들 진영은 딱히 어떤 입장을 직접 내비치진 않고 있으나, 이들도 비슷하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주의 이치를 음양과 남녀원리의 조화로 보고,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천륜으로 여기는 견해를 유교가 대변해 왔다면, 불교와 많은 신종교들은 이런 전통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거기에 편승해왔다. 이분법적 음양론과 위계적 가부장제가 버티고 있는 한, 유교, 불교, 신종교들이 성소수자들을 인권을 지닌 평범한 인간으로 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 마디로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인권에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그들을 보편적 인권의 바깥 영역으로 추방하고 싶어 하기로 치자면 국내 종교계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 하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종교가 사회의 일부인 한,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계의 태도 역시 사회 일반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남녀 창조의 섭리’란 본래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같은 유일신교 특유의 관념이지만, 서구의 확장과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전반에서 이 관념은 이미 보편성을 획득한 지 오래다. ‘음양의 조화’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엄연한 종교적 세계관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음양론은 종교와 세속의 경계가 무색한 보편적이고 심층적인 인식구조다. 이런 토대 위에 과학과 상식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지식까지 더해진 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그러고 보면, 돌출된 행동을 보이는 일부 개신교인들은 개신교계나 종교계를 넘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뿌리 깊은 우리 사회 자체의 전위부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인권헌장을 두고 부딪혀야 했던 대상은 일부 과격한 개신교인들도, 한국 개신교계도, 한국 종교계도 아니다. 그 대상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고하고 사실상 더 우세한 우리 사회 자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이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는 성소수자들을 보듬으려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보였다. 그럼에도 그가 자꾸만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은, 그가 우리 사회의 호모포비아 신경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간파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얕보았던 게 아닌가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얼마나 일을 제대로 했는지 하나하나 따지는 일은 일단 접고, 어쨌거나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제법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시 인권헌장 파기를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권 욕심 때문에 성소수자를 버리고 개신교를 택했다는 식으로 논평하는 이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상투적이고 피상적이다. 좀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인권변호사로 싸워온 강단으로 무장한 박 시장이 성소수자들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취한 나머지 그들을 짓눌러온 편견의 무게가 얼마나 묵직한지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성소수자들 그리고 사회 일반과 종교계의 미약한 진보 진영이 연대하여 이제나마 겨우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직면해온 편견의 벽이 얼마나 두텁고 높은지를 얕보았던 것은 아닌지. 언뜻 일부 종교인들의 돌출행동이 촉발한 것처럼 보이는 서울시 인권선언 파기 사태 그리고 인권운동가 출신 시장의 주춤거림과 우왕좌왕을 보면서, 차이가 차별로 둔갑하지 않는 보편적 평등과 인권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삼 절감한다. 그것은 바로 박 시장이 간과하고 얕보았던 것, 즉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 속 편견의 실체를, 여전히 압도적인 그 무게와 크기와 힘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소장 장석만)의 뉴스레터 345호(2014.12.16.)에 실렸으며 필자와 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로 김윤성 교수는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부교수(jssance@hanmail.net)이며 공저로 『종교전쟁』 등이 있고, 논문으로 「자살과 종교, 금기와 자유의 아포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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