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예술이 먼전가? 신학이 먼전가? “삶이 먼저다”

‘예술신학’ 감신대 심광섭 교수를 만나다(상)

▲‘예술신학’을 가르치는 감신대 심광섭 교수를 지난 7일 오후 냉천동 감신대 내 연구실에서 만났다. ⓒ베리타스

예술과 신학의 만남. 일찍이 토착신학의 대명사 유동식 교수(연세대 명예)에 의해 시도된 바 있지만 이를 체계화시킨 것은 그의 후배 신학도들의 몫이었다. 감신대 심광섭 교수(조직신학)도 그들 중 하나였다. 지난해 『예술신학』(대한기독교서회)으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그는 자신 안에서 예술과 신학이 만나 (학문적 성과로서의 열매가)무르익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7일 오후 그의 연구실이 있는 냉천동 감신대를 찾았다. 방학 기간 중이었으나 연구실 한 켠에서 책을 쌓아 놓고 연구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하루 이틀의 광경이 아닌 듯 보였다. 연구실을 둘러보니 고갱의 작품 ‘황색의 그리스도’가 눈에 들어왔다. 고갱이 타히티에 건너가기 이전 최고의 걸작으로 지목된 이 작품에서의 그리스도는 깊은 슬픔을 머금고 있기로 유명하다. 그리스도가 ‘홀로’ 지고 간 십자가의 고통이 전달되는 듯 했다. 육체보다 더한 고통은 누구도 함께하지 않았기에 겪은 철저한 고독이었으리라.     
 
심 교수는 요즘 페이스북에 자신이 감상한 명화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글들을 올려 페북 친구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명화들에 푹 빠져 지내는 그에게 근황을 물으니 예술에 관심이 많은 페북 친구들을 새로이 만나 교제하는데 바쁘단다. 친구들 중에는 물론 기독교인들이 다수지만, 타종교, 즉 불교를 믿는 이들 그리고 나아가 스님들과도 작품을 놓고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예술이 사람과 사람 간의 벽을 허무는 매개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신학’을 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십수년 전 예술신학을 한다고 하니 동료 교수들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로서는 ‘예술’을 접하는 것은 상류층, 소위 부르주아에게나 어울릴 법한 것으로 ‘부르주아 신학’을 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예술 세계는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 향유하고, 즐기는 식의 예술 작품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고난에 처한 이들에게 용기를 복돋우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그야말로 힘 없는 이들을 위로해주는 작품들도 많았다. 예술가부터가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맛보며 사는 인간이지 않은가."
 
▲시스티나 천장 벽화인 미켈란젤로의 ‘해와 달의 창조’. 하나님의 엉덩이를 묘사한 그의 작품에는 인간 안에 내재된 심미적 욕구가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다.  

그가 ‘예술신학’에 입문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현대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슐라이어마허가 있었다. ‘절대 의존의 감정’을 이야기하며 직관을 강조한 감성의 신학자로 평가 받는 그에게서 심 교수는 인간의 감각 기관, 특히 인간의 정서를 반영하는 ‘감성’에 매혹됐다. 이성 중심으로 흐르는 고대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정통신학에 반기를 들고 나온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며, 인생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삶’(Life)을 돌아볼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심 교수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한 마디로 ‘삶’의 신학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말한 감각이, 감성이 이성 중심의 신앙/신학에서 소외된 우리의 ‘삶’을 논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껏 만난 예술 작품들 중에 ‘계시적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었는지 심 교수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가장 어렵고 힘든 질문이라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서 대뜸 그의 책 『예술신학』의 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이 작품은 어땠는가"하고 물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해와 달의 창조’(1512)였다. 이제야 출구를 찾았다는 듯이 작품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며 대답을 해나갔다. 
 
그에 따르면,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이 작품을 그리는 동안 미켈란젤로는 그 누구의 출입도 통제했다. 성직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 교수는 "만에 하나 작업 중에 교황에게 발견되기라도 했다면 하나님의 엉덩이가 이렇게 노출될 수 있었겠는가"라며 "인간의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는 현대신학의 흐름을 짚어볼 때 미켈란젤로는 한참 앞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이 먼저였을까? 신학이 먼저였을까? 이런 질문이 부끄럽게 심 교수는 인간의 ‘삶’이 먼저였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고대 제의를 드리는 풍습은 ‘삶’의 한 부분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틀에서 놓고 보면 ‘예술’ 활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신앙 활동에 학(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신학’임을 확인했다. 그러면 ‘예술신학’,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가 하고 있는 ‘삶’의 신학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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