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베리타스 DB |
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12지파를 묶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으로 한참을 기동하다가 바벨론 포로기를 전후하여 열방을 품는 분, 이방인까지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으로 그 신학적 인식의 지평을 대폭 확장해나갔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 기반한 유대교의 민족주의 정념은 워낙 끈질기고 막강한 것이어서 예수 당시에도 그 정체성의 보루는 견고해보였다.
예수가 아브라함의 유대교를 계승한 증표는 그가 팔레스타인의 잘난 이스라엘 선민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두로와 시돈, 가이사랴 빌립보, 데가볼리, 사마리아 등지로 다니면서 당시 정통 유대교의 경계를 집적이며 하나님나라 복음을 활달하게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세의 유대교 전통도 존중하면서 나병 환자의 치유 결과를 검증받기 위해 제사장을 찾도록 했고, 갈릴리 사역에서도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고 그 선교 반경을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두 세대쯤 흘러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예수의 부활신앙을 체화하여 부활한 예수의 영적인 확신을 이렇게 선언하면서 종래 역사적 예수의 선교신학적 정체성을 부활의 지평 너머로 대폭 확장시켰다. "너희는 가서 모든 (이방)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그렇지만 이 새로운 신앙 전통이 정통 유대교의 섹트에서 탈각하여 ‘그 도’(to hodos)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로 자리매김되기까지는 또 적잖은 진통과 함께 꽤 오랜 세월, 꽤 진득한 역사적 경험이 필요했다.
잘 알려진 고넬료 에피소드(행 10장)와 이른바 ‘안디옥 사건’(갈 2:11-14)이 암시하듯, 정통 유대교의 변두리적 정체성에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여 껍질을 깨고 독립할 것인지의 진통이 마침내 약이 되어 기독교가 유대교의 특수한 정체성을 벗어나 기독교 나름의 보편적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보편주의 정체성 확산이라는 바톤을 이어받은 바울 사도의 기여는 혁혁한 것이었다. 그 역시 유대인과 유대교의 과거 기반이 정체성의 보루였고 대체로 그 범주 안팎을 오락가락했지만, 아레오바고의 연설을 통해서는 한 방의 큰 홈런을 날린 것이 주효했다.
그는 거기서 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변두리 족속의 잡신쯤으로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전통 속에 이름도 잘 모르는 이방신 제단의 한 비명에 새겨진 ‘미지의 신에게’라는 문구에 착안하여 그 미지의 신을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과 접속시켜 변증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동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신의 소생이라"(행 17:28)는 이방시인 아라투스의 시구를 인용하여 그 이방신과 이스라엘 신의 막힌 담을 허물었다. 이질적인 타자를 향한 바울(또는 누가)의 신학적 연금술이 빛나고 그 융합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그 뒤로 여전히 진통이 컸지만 역사의 흐름은 면면하여 유대교의 변두리에 정통의 일부로 기생하고자 했던 유대적 그리스도교는 주후 4세기경까지 이단섹트로 전전하다가 역사의 지평에서 실종되어버린 데 비해 바울의 보편주의 복음은 결국 승리하여 역사의 대세를 이루어나갔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고중세를 거치면서 신플라톤주의와 신피타고라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등의 희랍 사상을 대폭 수용/변용하는 과정에서 신학적으로 더 풍성해져갔다. 이교도의 신앙 전통과 관습도 과감하게 흡수하여 나름 토착화해나갔다. 그렇게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은 역사의 특정 울타리 안에 갇혀 화석화되길 거부하였고 오히려 정통으로 고착된 전통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의 돌파구를 열어갔던 것이다.
루터와 깔뱅, 쯔빙글리 등이 종교개혁운동의 선봉에 서서 개신교 신학의 전통적 기틀을 형성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500년간 신학의 흐름에는 눈부신 진보가 있어왔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문과 대소요리문답 등의 교리적 체계 역시 유럽의 교회가 겪어낸 역사적 경험이 이룬 소중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의 지평이 거기에 머문 것이 아니다. 신학의 진화도 꾸준히 계속되었고, 인간의 언어와 문화, 사상이 깊어지고 넓어짐에 따라 신을 인식하는 지평 역시 놀랍도록 확장되면서 기존의 정체성이 해체되어 새로운 울타리로 재구성되는 사건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계시 속에 이어져 왔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체성은 오로지 무한을 내다보며 하나님의 충만을 소망하는 중에 가까스로 그 역동성과 탄력성을 유지하면서 부패와 소멸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기존의 전통교리가 끊임없이 재해석되면서 그 편협한 '정통'의 거푸집을 해체해나갈 때 개혁주의의 본질적 가치도 성취될 수 있다. 또한 훨씬 이전 이미 신약성서가 확보한 대로 만유와 함께, 만유 안에서, 만유를 넘어 날아가시는 하나님의 영원과 그 충만의 지점을 상상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정체성은 역사 앞에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온갖 초월성의 가치가 역사 속에 성육화하지 못할 때 그 언저리에서 번식하는 것은 결국 종교권력화의 유혹에서 자맥질하느라 정신없는 자기기만과 자폐성의 늪이다.
성서가, 또 그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담백하게 증언하는 우리의 신앙적 기틀과 신학적 정체성의 궁극적 보루는 하늘의 우리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해지는 것이다. 물론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그 신적인 무한과 충만을 고스란히 이 연약한 육체적 삶 속에 담아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온전함(teleios)은 다행히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목적론적(teleological) 개념이다.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그리로 활짝 열려 있도록 꾸준히 자신의 오그라드는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경건하게 그 분의 온전하심을 닮아 그 무한과 충만의 미래를 현재의 순간 간신히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나의 신앙적 정체성이고, 그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연구하는 나의 신학적 정체성이다. 나는 또 그것이 성서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래 전 가르쳐주신 진정한 개혁주의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정체성은 고여 있는 우물의 은유적 관념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열려 있는 무한과 영원을 향한 충만의 에너지가 역사 속에 내려앉을 때 비로소 유의미해지는 역동성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약동하는 생명 개념으로 정체성(正體性)을 보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에 떠밀려 초라한 정체성(停滯性)으로 퇴락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