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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형사회’의 그리스도교 (2)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베리타스 DB
성형사회와 교회 
이상과 같이 우리사회가 성형사회적 병증이 심각하다는 주장에 이어서, 내가 말하고자 두 번째 논지는 이 성형사회적 병증을 야기하고 심화시키며, 병증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주요 존재가 바로 한국의 교회, 특히 대형교회라는 것이다.
우선 주지할 것은 ‘몸’의 레토릭이, 앞서 보았듯이, 몸을 매개로 해서 개인과 사회가 연계되고, 특히 사회의 이념, 질서, 관습 등이 개인에게 각인되게 하는, 일종의 권력의 일상화의 매개장치가 몸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그것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성서는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몸’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몸’으로서 묘사함으로써, 교회에 속한 개개인이 마치 몸의 유기체적 지체처럼 연계된 것으로 보았다. 바울보다 한 세대 이상 후대에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주류파 집단으로 포스트바울주의자들의 텍스트들인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바울의 〈고린도전서〉의 논지를 재해석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교회 구성원 간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면, 후자는 위계질서에 의한 통합을 주장한다. 이러한 교회-몸 레토릭의 발전사는 몸인 교회는 머리인 그리스도의 가치로 묶인 공동체이며, 그 내부의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담론적 결속체로 해석되고 있다. 그것은 이상적 몸이 되려면, 병든 부위가 없어야 하고, 혹 그런 부위가 있다면 제거하거나 고쳐서 동질적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성형사회로 해석한 한국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한국적 성형사회의 병증은 훼손된 몸에 대한 공포증, 그리고 이상화된 몸과 동일해지고자 하는 강박증, 하여, 전자를 배제하고 후자에 몰입하는 사회처럼 1세기말과 2세기 초 주류그리스도파 집단들의 교회-몸 담론이 그러했다. 
한데 한국의 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이 점에서 이들 포스트바울주의적 텍스트의 교회-몸 담론을 더욱 극단화시켰다. 우선 한국에는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교인의 수가 2천명 이상의 교회를 말하는 대형교회(mega-church)가 대략 880개쯤 된다. 이것은 대형교회의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1200~1500개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수이지만, 전체 교회수 대비 대형교회의 비율이 미국의 0.005~0.007%에 비해 한국은 1.7%나 된다. 또 장년이 2만 명 이상인 초대형교회(giga-church)는 미국이 7개인 반면, 한국은 7~8개이다. 요컨대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형화된 교회의 주도권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 세계의 대형교회들이 거의 그렇듯이,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담임목사가 교회의 절대1인으로서 카리스마적인 독점적 리더십을 장기간 장악하여, 교회의 가용자원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양적 팽창에 성공한 교회들이다. 하여, 중소형 교회들의 목사들 가운데는 카리스마적인 독점적 리더십을 가진 이가 극소수인 반면, 대형교회는 거의 전부가 그러한 성격의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캐릭터는 수잔 제퍼드가 말한 ‘하드바디’와 닮았다. 그들은 예외 없이 남자이며, 거의 대부분 명령하는 자로서 군림하는 마초적 권위주의자이다.  
이들이 세우고 대형화시킨 교회들은 대부분 199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수천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예배당과 거대한 부속건물들을 포함한 종합건조물(들)을 건축하였는데, 그것은 3저 호황으로 자산이 크게 불어난 교인들의 기부금을 교회 재건축에 투자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커다란 성장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배당의 건축양식인데, 대부분의 재건축 교회당은 가톨릭교회당이나 과거의 개신교교회당들의 긴 직사각형 모양 혹은 십자가 모양과는 달리 원형, 타원형, 혹은 반원형 구조로 바뀌었다. 일견 수직적 예배당 양식이 수평적 양식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회당 전면에서 목사 1인을 주목하기가 훨씬 수월한 구조라는 점에서 1인의 카리스마적 위계성이 더욱 강화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전면에 대형스크린을 두고, 1인에 집중하는 극장식 조명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목사 중심성과 위계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편 반원형의 구조는 마치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처럼 중앙의 1인이 전체를 감시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 요컨대 지도자의 힘을 중요시하고 그가 전체를 감시하는 특권적 주체임을 강조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건축된 대형교회들의 양식은 하드바디적 성격이 더욱 효율적으로 강화된 셈이다.  
한편 외양으로 보이는 예배당은 대개 변형된 고딕양식을 띠고 있고, 부속건물들은 고딕보다는 그 기능성이 강화된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것은 일방향적인 고딕적 성격이 강하던 서양의 전통적 교회당보다는 소프트바디적 요소가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핀 것처럼 후기자본주의적인 하드바디와 소프트바디의 결합체 같은 양상을 보인다. 
요컨대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의 경우 교회당의 대형 증축은 교인의 양적 팽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때 예배당 중심의 단일건물에서 다양한 기능의 부속건물들을 포괄하는 복합건조물로의 전환이 이 증축의 새로운 건조물상의 외형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 예배당이 직사각형의 양식에서 원형 혹은 반원형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1인의 절대권력의 수직적 위계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하드바디적 성격을 더욱 극대화하는 구조물이다. 이것은 몸은 변화하였지만, 그 변화는 과거의 힘 중심적이고 통제 중심적인 이념과 가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그런 점에서 변화보다는 연속성이 강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회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가장 마초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는 감시와 통제의 권위주의적 체제를 옹호하는 질서의 대변자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성형사회 너머’의 그리스도교
여기서 우리는 바울 자신을 좀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바울과 포스트바울주의적 텍스트들 사이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날카롭다. 바울의 공동체인 고린도교회 내에서 벌어진 갈등은 크게 세 가지 양상을 지녔다. 공동체 지도세력간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로 표상되는 계급적 갈등, 그리고 남자와 여자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범주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난한 자, 특히 (방출)노예나 여성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 모두는 차별 없는 주체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그들 각자가 교회 내에서 발언권을 갖고자 했으며 그것이 교회 내의 갈등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바울은 이 갈등을 위계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그들 각각은 서로 평등한 연결망으로 엮인 존재들임을 강조하면서, 각기 자기가 선물받은 은사(카리스마)의 크기를 무기삼아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로 결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하여 바울의 교회-몸 담론은, 병든 몸을 배제함으로써 건강한 몸이 구현된다는 포스트바울주의자들의 교회-몸 담론과는 전혀 다른 관점의 몸 담론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바울주의적 주류그리스도교보다 훨씬 더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오늘의 교회, 특히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바울의 메시지와는 반대편에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의 (대형)교회가 그런 것처럼, 성형사회의 몸 강박증과 훼손된 몸에 대한 공포증은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야기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을 경고했다. 오늘 한국정부가 종북담론으로 공포마케팅을 벌여왔고 여전히 그런 시도를 끊임없이 벌이고 있듯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나 타종교, 그리고 이른바 이단들에 대한 적대적 공격을 가속화하고 있듯이 말이다. 성형사회의 병증이 귀결시키는 결말은 대개 이렇다. 
한데 바울은 그러한 길이 아닌, 화해, 배려, 공존의 장이 교회이며, 그것을 위해 각 몸들이 서로 유기체로 엮인 지체들이라는 교회-몸 레토릭을 사용했다. 바로 이것은, 내가 보기엔,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오랜 하드바디적 권위주의 전통을 청산하고 새로 시작할 신앙의 가장 중요한 거점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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