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남순 노트] 통합진보당 해체결정 앞에서

강남순·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진보"라는 고귀한 정신에 붙인 "법적-역사적 주홍글씨"
▲강남순 교수 ⓒ베리타스 DB
미국 시간으로 어제 (12월 17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1959년 큐바 혁명이후 적대적 긴장 관계속에 있었던 큐바에 대하여 통상금지령을 포함한 모든 규제조치 풀고, 감옥에 갖힌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면서 "적"에서 "친구"로 이행한다는 역사적인 선언을 하였다. 그 배경이야 어떻든 긴장과 대립, 정치이념적 갈등과 경제적 제재등을 통해서 "보통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어려움들의 무게가 덜어지게 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끊이지 않는 다양한 폭력과 전쟁의 소식들로 인해,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던 이들에게, 이 역사적 선언은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한 줄기 가능성을 다시 부여잡게 한 소식이 되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18일 (한국시간으로는 19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사회 곳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절망감을 구체화 시키는 "역사적 사건"을 결정했다:"진보"라는 고귀한 정신에 "법적-역사적 주홍글씨" 를 붙인 것. 
나는 이 헌재의 결정이 단지 "통합진보당"이라 이름을 가진 "특정 정당의 해체"라는 한 특별한 사건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 결정은 이 21세기 한국역사에서 "진보"라는 이름하에 인류가 추구해 온 보다 나은 정의, 평화, 자유민주주의, 평등세계에 대한 이상을 짓밝고 황폐화시키는 "거대한 오류"를 범한 사건이라고 본다. 대법관 9명이 생각하는 "법과 정의"란 도대체 어떤 기준들로 형성되어 있는가. 
니체는 한 사회가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자유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저항의 정도"를 보면 된다고 했다. 즉, 기존의 정치체재나 제도에 "저항 (resistance)"하는 것을 얼마만큼 허용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자유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당이 기존의 현상유지적 체제에 "저항"하는 행위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해체시켜버려야 정치사회적 안정이 지켜진다고 보는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이라면, 사실상 그들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개념인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철학적 물음을 다시 물어야 한다. 
"보수"는 보호해야 하지만,  "진보"는 해체시켜야 한국이 "안정된" 사회가 된다고 보는 단순한 이 이분법적 사유방식은, 사실상 폭력과 독재정치에서 가장 기본적인 모토가 되어 왔다.  도대체 "보수"와 "진보"란 무엇인가. "보수"의 우선적 의미는 기존의 질서와 체재를 보존한다 (conserve)는 입장을 강력하게 지니는 것이고, "진보"란 기존 현실의 현상유지 (status quo)가 아닌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나아가려는 (progress)" 정신이다. 인류는 이 "현실주의/보수"와 "이상주의/진보" 라는 이 두 축의 건강한 긴장관계속에서 문명을 발전시켜왔으며,  인권의 개념도 확장되고, 정의의 범주도 복합화되고, 평화와 평등의 이해도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보"란 언제나  "유토피아적" 성향을 지니게 된다. 즉 기존의 세계 "너머"에 대한 갈망과 희망을 부여잡고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no-place" 라는 의미의 "유토피아(u-topia)"가 무작정 현실파괴적이고 현실도피적인 망상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칼 만하임은 그의 책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Ideology and Utopia)" 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를 할 때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 (absolutely unrealizable utopia)"와 "상대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 (relatively unrealizable utopia)"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인류역사에 일어난 새로운 변화들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꿈을 꾸던 이들에 의하여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유토피아적 진보성은 "상대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여서, "지금" 상황에서는 "실현불가능한 것" 이지만, 다른 역사적 정황으로 바뀌게 될 때에는 "실현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개별인들의 평등, 권리에 대한 개념이 "불가능한 유토피아"라고 간주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서 19세기만 해도 미국에서는 여성과 흑인에게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하라는 "진보"정신을 가진 이들은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꾼다고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보적" 사유와 정신, 그리고 행동들이 인종, 성별,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시대를 가져온 것이다. 이 세계가 기존체재를 지켜내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보수"만 가득찬 사회라면, 정의, 평등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특정한 그룹의 지배와 배제가 반복되는 폭력적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보수/현실주의"와 "진보/이상주의"는 한 사람속에도, 한 제도, 한 사회속에서도 공존하면서, "선적/대립적 관계"가 아닌 "나선형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판적 긴장관계"속에서 공존해야, 비로소 성숙한 개인, 성숙한 자유 사회로 나아갈 수 가 있다. 또한 인간이 모인 집단이라면, 어디에나 "어두운 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어느 집단도, "보수"의 이름으로든지 또는 "진보"의 이름으로 모인다 해도,  "이상화"되거나 "낭만화"되어서는 안되며, 치열하고 지속적인 자기비판적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도 안된다. 어느 특정한 정당의 "무비판적 옹호" 또는 반대로 "무비판적 비하/제재"는, 그 정당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언제나 또 다른 폭력적 집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한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부여하고자 열정적으로 헌신하던 "진보"적 정신을 가진 이들이, 그 사회에 중요한 성숙의 거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이들 "진보"적 정신을 지닌 이들은, 모든 인간들이 태어날 때 부터 부여받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제도적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뿌리내리게 하고, 지켜내려는 진정한 "보수"가 아닌가. 여기에 "보수-진보"라는 개념을, 대립적인 이분법적 사유방식으로만 보는 것의 그 인식론적이고 실천적인 한계와 위험성이 있다. 
한 사회에서 이러한 "유토피아적 정신을 지닌 진보"적 사유를 한 사람들이 사라지게 되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된다고 폴 뤼케르(Paul Ricoeur)는 그의 책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 대한 강연 (Lectures on Ideology and Utopia)" 경고한다. 이제 2014년 12월 19일, 헌재는 인류사회가 추구해 온 보다 나은 정의, 평화, 평등한 세계에 대한 고귀한 열정을 담은 "진보"라는 담론과 실천에, "주홍글씨"를 붙임으로서,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적 이상을 황폐화시키는 법적-역사적 오류를 만들었다.
언제, 
누가, 
어떻게, 
이 역주행하는 시대정신의 시계를, 다시 되돌려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 본 글은 강남순 교수가 12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 노트에 올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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