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분단은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

기독교 인사들의 잇따른 역사왜곡 유감

남북을 나누는 비무장지대(DMZ)는 보기만 해도 소름끼친다. 한국전쟁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동북아 특파원을 지내면서 남과 북이 판이한 길로 접어든 과정을 지켜본 돈 오버도퍼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DMZ는 철책과 날카로운 철조망이 하늘 높이 솟아있으며 1천여 개의 초소와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벙커 속에는 중무장한 양측의 군인들이 사시사철 서로에 대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다. 드높은 철책 뒤 북측에는 1백 10만의 북한병력이 있고 남측에는 남한군 66만 명, 주한미군 3만7,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또 주한미군의 뒤에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군사력이 버티고 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포착되는 순간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이 치러질 만반의 태세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연방이 와해된 지금도 DMZ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완벽하게 요새화된 대치 지대로 남아 있다.”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2002년])   
DMZ가 연출하는 살풍경은 벽안의 외국인들에겐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나 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동노회(노회장 한성수 목사, 이하 동노회) 초청으로 방한한 프랑스 개신교 연합교회 상트르 알프 혼 노회(이하 알프 혼 노회)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10월27일(월) 철원 DMZ를 돌아봤다. 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살풍경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사실 프랑스도 이웃 독일과 오랜 기간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독일과의 평화체제 구축이 유럽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출발점임을 절감했었다. 이런 기억을 가진 프랑스인들에게 DMZ는 가까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재료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을 자처하지만, 여전히 서구 선진국에게 한국은 동방의 조용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심지어 혈맹이라는 미국조차 몇몇 관련 최고위 정책 결정자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모른다. 알프 혼 노회 목사들과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 그리고 이 나라가 왜 남북으로 갈렸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의 눈은 DMZ라는 생생한 분단현장을 순례하면서 떠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고 했고, 그러면서 한국 상황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정을 마치면서는 남북 분단이 하루빨리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 자신은 남북 분단에 얽힌 아픈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이런 아픈 역사를 혹시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잇따른 몰역사적 망언, 역사에 대한 이해부족 드러내   
최근 김성주 대한적십자가 신임 총재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10일(금) 김 신임 총재가 2000년대 초 인천의 한 교회에서 ‘남북 분단과 북한의 빈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김 총재가 교회 강연 도중 “한국 땅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셨고, 이렇게 남북한을 가르셔서 저희를 겸손하게 하신 것도 이유가 있으시고...”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 외에도 김 총재의 다른 발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총재의 다른 발언은 일단 논외로 하고자 한다. 단지 ‘남북한을 가르셔서 저희를 겸손하게 하신 것’이라는 대목만 따져 보고자 한다. 김 총재의 발언은 “우리 국민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남북을 분단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발언은 몰역사적이다. 그리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더욱이 한반도 분단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면 도저히 이런 발언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소 초강대국의 세력게임으로 파생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군대를 보냈다. 미국은 별반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의 패전 이후 항복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미국의 우선적인 관심은 일본의 전후처리였고, 군정을 실시하기 위해 2,000명에 이르는 민정관을 양성했다. 미국 정부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이에 문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집필을 의뢰했고, 그 결과가 바로 『국화와 칼』이란 저서였다.  
그러나 한반도는 사정이 달랐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사태를 막아야 했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를 장악하면 일본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에 딘 러스크 대령과 본 스틸웰 중령으로 하여금 미국의 세력범위를 정하게 했다. 두 사람은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상부의 채근에 못 이겨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한다는 안을 마련했을 뿐이다. 결국 한반도의 운명은 책상머리에서 결정된 셈이다. 이렇게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이 졸속으로 갈린 경우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한 미 대사관 문관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한반도 분단 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 시대, 이 세계에서 한반도의 분단만큼 그 연원이 놀랍고 충격적인 사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분단 당시 당사자들의 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의 부산물이다.”   
한반도 분단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아니, 세속 초강대국끼리의 세력 다툼이 하나님의 뜻이 개입될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고 적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세속의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물리친 사례는 성경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헤롯이 구세주의 탄생을 두려워한 나머지 군사를 동원해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인 것이 가장 극명한 예다. 만약 김 총재의 말대로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강대국을 통해 약소국의 운명을 멋대로 요리하는 신에 불과하다. 따라서 김 총재의 발언은 신앙고백이 될 수 없고 그 이전에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기독교는 역사종교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류 역사의 구체적 사건과 밀접하게 얽힌다. 그러나 섣부른 해석은 금물이다. 앞서 지적했듯 세속의 강력한 권세가 하나님의 뜻을 밀어내는 일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기독교 인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곡해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던 문창극 전 총리지명자의 발언이고, 이번에 불거진 김성주 신임 적십자사 총재의 강연 내용이다.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인식, 더 나아가 기독교적 역사인식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먼저 사실을 수집하고, 선별해 ‘역사적’이라고 할 만한 사실을 골라내고 나서야 이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생기는 법이다. 제발 하나님의 뜻 운운하기 전에 사실부터 제대로 알자.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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