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북 리뷰] 친절한 교황 안내서

김근수 저, 『교황과 나』(메디치刊)

▲『교황과 나』(김근수 저) 겉 표지.
지난 8월 서점가는 교황 마케팅이 대세였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지난 해 3월부터 교황이 방한한 8월14일(목)까지 교황을 주제로 한 책은 총 46권이 출간됐고, 이 가운데 30권이 7월과 8월 사이 나왔다고 밝혔다. 비율로 환산하면 65%가 교황 방한 즈음에 출간된 셈이다. 
그러나 교황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어도 정작 그의 진면모를 생생하게 드러내준 책을 찾기는 힘들다. 말 그대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이런 가운데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가 교황 방한에 발맞춰 내놓은  『교황과 나』(메디치刊)는 단연 군계일학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다.
저자는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1) 예수회, 2) 프란치스코 성인, 3) 교황의 조국 아르헨티나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착좌부터 파격적인 행보로 전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저자가 든 세 가지 키워드를 찬찬히 곱씹어 보면 그의 행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에 불과하다. 
먼저 예수회는 가톨릭 내부에서 일었던 혁신 분파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생 청빈을 실현했고, 교황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오랜 군사독재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했던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의 일원으로서 출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존중해 ‘가난’을 의제로 끌어 들였다. 또한 비유럽권인 동시에 해방신학의 대륙 남미 출신이다. 물론 교황이 해방신학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제로서 그가 걸어온 이력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해방신학의 핵심 주제와 거의 일치했다. 
프란치스코의 변방성, 파격 행보를 이해하는 키워드 
무엇보다 교황이 지닌 이 세 가지 요소들은 하나 같이 가톨릭의 주류가 아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교황에겐 ‘변방성’이 체화됐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간 보인 파격 행보는 교황에겐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외부의 시선에선 파격으로 비쳤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을 알려준다. 바로 가톨릭이라는 종교 조직이다.
“교황과 교황청은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교황청은 가장 장구한 역사를 가진 조직이며 교황은 그 대표자다. 로마의 호사가들은 교황과 교황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라고도 표현한다. (중략) 둘째,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는 종교의 수뇌부라는 점이다(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종교는 이슬람교다). 가톨릭 신자는 전 세계 6대륙에 걸쳐 12억 3천만 명 이상에 이른다.”- 본문, 86쪽
교황청은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과연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낸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그 비결을 자기혁신에서 찾는다. 
“최장 기간 존속한 조직, 전 세계 12억이 넘는 신자, 유일무이한 지위의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그 비결을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라고 감히 해석한다.”- 본문, 87쪽
▲한국 방문시의 교황 프란치스코. ⓒ사진제공=교황방한준비위원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교황청의 자기혁신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성립할까? 
아마 이 책 『교황과 나』의 강점은 이런 의문을 해소시켜주는데 있다고 본다. 저자는 파파 프란치스코의 등장을 가톨릭에서 2000년 동안 이어져왔던 자기혁신 노력의 연장선에 놓인 사건이라고 본다.
“교황과 교황청은 로마가 망한 이후 1천 5백년을 존속해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교황을 맞이했다. 중흥의 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황청이 본래의 복음 전파에서 벗어나 물욕과 영토욕으로 혼탁해지려고 하면 가톨릭 내부에서는 강고하고 원칙에 바탕을 둔 혁신 운동이 일어났다.”- 본문, 87쪽 
파파가 착좌했던 저간의 상황을 보면 저자의 시각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교황청은 보수 노선을 걸어왔다.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권기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며 해방신학자들을 배척하는데 앞장서왔다. 
그러나 그의 재임 시기 바티칸은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바티칸 은행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 사제들의 잇따른 성추문, 그리고 소위 ‘바티 리크스(Vatileaks)’로 불린 기밀문서 유출 등등. 이러자 베네딕토 16세는 용퇴를 결심한다. 사실 교황의 용퇴는 출세주의가 판을 치는 교황청 분위기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전임 교황의 퇴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한없는 존경으로 가득하다.
“베네딕토 16세여, 당신은 위대한 교황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죄송합니다.”- 본문, 96쪽 
이 책의 미덕은 비단 교황 안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모순을 맹렬히 질타한다. 
미묘한 모순이 존재하는 한국 가톨릭 
이제껏 가톨릭은 사회 정의에 앞장서 왔다. 밀양, 강정, 세월호 참사 등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달려온 분들은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의 속사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회 정의에 앞장서는 사제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대다수 신부와 주교들은 출세에 눈멀어 위만 바라본다. 현재 이 나라엔 추기경이 두 명 씩이나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국가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되려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특별법 입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에게 찾아가 ‘끗발’ 운운하며 상처 입은 유가족의 마음에 소금을 뿌렸다. 
저자는 파파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이 한국 가톨릭교회와 한국 사회 전반에 던지는 함의에 귀 기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교황이 연일 개혁의제를 던지고 있음에도 꿈쩍하지 않는 교회에 안타까움도 드러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에서 한국 천주교회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교황의 노력을 한국 천주교회가 크게 환영하고 그 노력에 적극 동참하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주교들의 삶에도 두드러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순진하게도 새 교황 취임 이후 골프장에 출입하는 성직자들이 당장 골프를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신부들은 골프장 출입을 그만두지 않고 있다. 육신의 나이가 곧 여든이 되는 교황이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다. 교황을 인용만 하고 교황한테 배우기는 싫은 것일까.”- 본문, 246쪽 
저자의 질타처럼 한국 가톨릭교회, 그리고 한국 사회는 교황을 입에 올리기는 좋아하면서 정작 그의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 교황은 한국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배려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방한 일정 내내 그의 제의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느 한국측 인사는 정치적 중립을 들어 리본을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그가 한국을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그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이 개혁의제를 실현시키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가톨릭 세계주교대의원대회(주교 시노드) 특별회의에서 동성애를 포용하려 했으나 보수파의 반발로 인해 무산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한 세대 이전의 개혁교황 요한 23세가 개최한 제2차 공의회의 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의제가 구현되려면 또 다른 한 세대의 시간을 필요로 하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 진보가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현실임을 감안해 본다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분명 파파 프란치스코 같은 개혁 교황을 우리 시대에 만날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은총일 것이다. 이제 핵심은 ‘이 같은 은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으로 옮겨가야 한다.
“위기가 프란치스코를 불러냈지만,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침몰만을 기다리는, 상어 떼가 득실대는 바다 위에서 떠 도는 한 조각 뗏목의 주인 같기도 하다. 과연 그는 세계사적 부름 속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문,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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