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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칼럼] 빛을 잃은 에클레시아

하태영 목사·삼일교회(기장)

▲하태영 목사 ⓒ베리타스 DB
요즘 한국교회에 별난 현상이 있습니다. 몇몇 큰 교회, 소위 성공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자기교회에 대한 나르시시즘 현상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으나, 가뜩이나 교회를 향한 세상인심이 흉흉한 터에, 내 교회만은 ‘아니다’는 것인데, 그만큼 가시 돋친 세상인심을 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를 정말 같은 지체로 생각한다면 내 교회 안에 움츠러들지 말고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게 정도일 것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거칠기는 하지만 바울이 로마에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의 근황으로부터 바울이 의도한 교회를 개략해봅니다. 로마의 치안당국에 의해 주거 이동을 제한받은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 원로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유대인으로서 황제에게 제소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아직은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의도를 ‘이스라엘의 희망’(행 28:20)이라는 말 속에 담아 표현합니다. 과연 그가 의도한 ‘이스라엘의 희망’은 무엇일까?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시각으로 보면, 바리새인이면서 로마 시민인 바울은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법과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두 세계를 해체시키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조직을 세우려 했던 게 분명합니다. 로마제국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닮으로써 스스로 정의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유대교 역시 유대교의 생존을 위해 예수를 죽임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의 정의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제국 밖의 정의, 율법 밖의 정의를 말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실천적인 사회조직으로 ‘에클레시아(eccle-sia)’ 즉 교회를 세워나갑니다. 그가 자신이 세운 에클레시아에 쓴 편지: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이방인이나 거류민들(zenoi)이 아니며, 거룩한 자들의 동료 시민들(sympolitai)이자 하나님의 집안 식솔들(oikeioi)입니다”(엡 2:19). 이 짧은 문장은 분명 두 세계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과 유대교입니다.   
로마제국과 유대교는 이미 정의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엄격한 신분제도와 성/속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으로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이들은 서로 대적하면서도, 이익이 되는 선에서 타협해가며 각기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두 체제의 타협의 산물입니다. 여기에 반해 자유민들의 공회(assembly)로서의 에클레시아는 두 체제에 대응하는 사회적 유기체입니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롬 12:5)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서 ‘에클레시아’는 메시아 사건으로 형성된 메시아적 인류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이 끊임없이 모세의 율법을 불러내서 재해석한 이유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인류구원의 대안일 수 없는 유대교를 해체시키고 그 자리에 복음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엡 2:14)는 어떻습니까? 역시 팍스 로마나를 해체시키려는 핵심 개념입니다.   
혹자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a)는 말씀을 들어 바울이 세속 권력을 인정한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소위 ‘두 왕국설’입니다. 그러나 야콥 타우베스는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로마서 13장을 악한 로마제국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해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차피 망할 나라인데, 반란이나 봉기를 일으켜서 뭐하겠냐는 말이지요. 타우베스의 생각은 칼 바르트가 로마서를 주해하면서 13장 첫 문장을 12장 마지막 문장에 가져다 붙임으로써 두 왕국설의 긍정을 잠재운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가 아닌 데 있습니다. 정의가 죽은 세속정치의 대안도 못되고, 세상을 두 편으로 가르는 율법종교의 대안도 되지 못한 게 교회들의 실상입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희망’으로 삼은 ‘에클레시아’는 빛을 잃고, 극심한 생존경쟁 체제에서 제 각기 살아남기 위해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는 이익집단과 다를 바 없는 교회들이 된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초라해졌습니다. 과연 우리의 교회들이 불의한 체제를 해체시키고, 메시아적 인류 구원을 담지한 에클레시아로 거듭날 수 있을지,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 이 글은 공동체성서연구원이 발간하는 『햇순』 (통권223호, 2014년 9월)에 실렸으며 저자의 허락을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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