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우리 안의 전병욱: 집단적 투사의 그림자들

최규창·한국기독학생회(IVF) 이사

[편집자 주]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범죄 사실을 집약한 『숨바꼭질』이 출간된 가운데 최규창 한국기독학생회(IVF) 이사는 전병욱 현상을 사회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추천사를 보내왔다. 최 이사는 이 글을 통해 이 현상이 우리 사회 모든 구조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본문은 『숨바꼭질』에 수록돼 있다. 저자의 승인 하에 전문을 싣는다. 
우리 안의 전병욱: 집단적 투사의 그림자들 
14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였던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는 분석심리학이 태동되기 수 백 년 전에 이미 관상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최고의 축복으로 체험하는 내면의 행복(béatitude)을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분석심리학을 언급한 이유는 그가 기도의 첫걸음으로 제시한 방법이 ‘리비도의 내면화’(프로이트) 또는 ‘투사의 철회’(융)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과의 만남(초탈)을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형태의 상(相)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소망하는 꿈이나 숨기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 그것을 외부의 존재에게 전이시킴으로써 자기의 꿈과 욕망을 숨기고 주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적 자기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흔히 투사(投射, projection)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는 이 현상이 가장 극단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도덕적 무장과 자기검열이 강조되고 초월적 관계를 추구하는 집단, 즉 교회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신학적, 역사적,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투사가 가장 용이한 구조를 지닌 채 성장해 왔다. 지난 수 십 년간의 양적 성장은 무엇보다 성서해석과 교회론을 독점한 카리스마적 목사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고, 우리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으며 신앙의 체계를 쌓아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놓인 두터운 투사의 벽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 과정은 경직되고 엄격한 ‘구원 교리’를 오랜 기간 동안 내면화한 성도들에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나의 내면과 삶 속에서 누리고 실천하기 보다는, 그 복음의 ‘선포자들’ 또는 ‘선포 방법들’에 집중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보다는 목사, 교회, 성서(교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예수처럼 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망을 그것에 투사시켰다. (사실 우리 ‘외부에’ 절대적 진리로 존재하는 신을 닮아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굳이 지난 수 천 년의 교회사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매 주 교회에서 초라한 죄인이 되어 회개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교회의 선교활동’으로 국한시켜왔으며,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보다는 이미지로만 가지고 있는 예수라는 존재를 언어적으로 시인함으로써만 가능한, 이해하기 어려운 영혼구원의 신학을 신봉하게 되었다. 정작 하나님 그 분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 투사가 일어난 것이다.  
‘전병욱 현상’은 이러한 집단적 투사의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진 한국교회의 암울한 환경이 만들어낸 시한폭탄 같은 현실이다. (여기서 ‘현상’이라 부른 이유는 그의 범죄가 단회적 일탈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반복되었고, 지금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추종 집단의 양적 성장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이라고 보기 힘든 연속성이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우리가 투사의 대상으로부터 바라는 것은 결국 자기 욕망의 실현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예수를 보고, 자기가 보고 싶은 목사를 상상하며, 자기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성서의 구절을 사랑하고,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교회를 늘 찾아 헤맨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은 결국 우리의 욕망을 한국교회에 집단적으로 투사시킨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는 투사의 대상을 원형(元型, archetype)과 분리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목사는 곧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며 목자로 여겨진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로 세워져 가는 교회보다는 목회자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꿈꾼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일상 속에 주어진 ‘공동체성’과 ‘교회성’을 미련 없이 버리고, 주일날 목사가 우리를 반겨주는 특정한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한 나머지 거기에 우리의 신앙의 에너지를 모두 헌신한다. 대형교회의 목사는 이미 목회자의 원형을 점령하였고, 성도들의 독점적 투사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와의 만남은 우리의 탈(脫)주체성을 자극하여 동일시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의 부탁은 곧 나의 욕망으로 환원되며, 그의 눈물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모든 정상적 판단을 중지시킨다. 거짓으로 일관된 논문표절 해명에 대한 오정현의 눈물의 사과를 보며 성도들이 ‘아멘!’과 박수로 화답하는 현상은, 전병욱의 욕망의 희생자들과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겪고 있는 집단적 체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일종의 불가항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투사를 통한 내면의 왜곡은 외부 구조의 힘을 더욱 왜곡시킨다. 이미 주체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집단이나 공동체에는 어떤 비상식적인 일이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리고 발생한 일에 대해 사유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반을 상실한다. 전병욱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심각한 죄를 지으면서 목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람들은 목사에게 투사함으로써 허구적 기대를 가졌고, 이를 아는 목사는 자기의 욕망을 다른 여성들에게 투사함으로써 그들 역시 자신을 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다. 그리고 범죄는 점점 대담해졌던 것이다. 모든 것이 드러난 후에도 교회가 한동안 이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역시, 목사 본인 외에는 뚜렷한 책임자가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또는 교회의 ‘허상적 덕(德)’을 위해서 희생양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마비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도덕적 책임이 실종된다. 목사 본인 외에는 누구도 도덕의 수호자로 호출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전병욱은 끝까지 그러한 최소한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전병욱 현상은 우리 사회 모든 구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끊임없는 욕망의 투사와 희생양 만들기, 집단적 광기를 우리는 정치, 사회, 기업, 문화, 심지어 교회와 가정에서도 보고 있다. 이미 죽은 정치인들에게 투사된 국민적 기대는 그의 딸이나 후계자들에게 전이 되어 지금도 그들이 우리나라를 통치하도록 만들었다. 오죽하면 지난 2012년 대선을 박정희와 노무현의 싸움이라고 했겠는가. 국가, 재벌기업, 교회에서의 2세, 3세 지배가 가능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만 교회와 가정의 경우는 현행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나 온정주의로 정당화될 뿐이다. 교회도 세상 속의 조직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와 한계를 그대로 안고 들어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전병욱 현상을 통해 우리는 집단적 투사의 그림자들을 목격한다. 그것은 도덕적 비판의 차원에서 규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중은 그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했고, 그의 책과 설교에 열광했으며, 그와 동일시되기를 원했다. 투사 욕구는 생각보다 강하고 자연스러우며, 공동체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무의식적 과정이기도 하다. 투사는 우리가 의지적으로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도 당신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계속 스승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제자들을 깨우셨다. 풍랑 앞에 떠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고 책망하셨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마17:20), 배고픈 군중들을 위해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요6:5)고 말씀하셨다. 또한, 병자들에게 ‘네 믿음이 너를 온전케 하였다’고 하셨고(막10:52), 적극적으로 당신의 옷자락을 만져 병을 고친 여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칭찬을 하셨다(막5:34).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처럼 물위를 걸을 수 있었고(마14:29), 사탄을 번갯불처럼 떨어뜨리는 기적을 일으켰으며(눅10:18), 스승보다 더 위대한 일도 하게 될 것이었다(요14:12). 끊임없이 예수를 의존하였던 제자들의 투사는 철회되어야 했다. 그들은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백성과 선포자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철회는 마침내 주님의 죽으심과 승천으로 완성되어 온 땅에 예수 운동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예수께서도 ‘선하신 이는 하나님 한 분’(마19:17)이라고 하신 점을 미루어보건대 오늘날 목사와 교회, 성경 자체, 신학적 교리에 과도하게 씌워진 투사는 너무나 비성경적이며 파괴적이다. 불교에서도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그를 죽여버려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진리와 직접 대면해야 하고, 외부의 거룩한 대상을 만들어 부당하게 의존하는 투사를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와 교회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투사를 철회한 후에 목사와 교회는 비로소 온전한 모양으로 다가올 것이고 하나님의 온 백성의 공동체는 그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교회 갱신의 첫 출발은 이러한 투사된 욕망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원론이 극복되고 교회론이 다시 씌어질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 중대한 시금석 앞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교회 스스로가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병욱 현상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불행히도 이 비극은 여전히 한국교회를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다. 투사를 철회하고 그를 버려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그 대가로 그는 21세기 초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무의식의 그림자로 기억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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