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나눔의 기적

2014년 8월 3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출애굽기 16:12-18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당신들은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들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아멘. 
사도행전 2:43-47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아멘. 
누가복음서 9:12-17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아멘. 
설교문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매일같이 함께 모여 찬양하며, 떡을 떼고 잔을 나누며 성만찬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가진 것을 모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함께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이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지난 이천 년 교회 역사를 통해 좋게도 적용 되고, 또 해석이 왜곡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난 22년 전 우리나라에서 ‘휴거’사건이 있었습니다. 휴거는 하늘나라로 들림 받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을 주장한 이단파, 다미선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선교회 회장은 이만희 목사입니다. 선교회는 1992년 12월 24일 자정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와서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들려 올린다고 예언했습니다, 그 당시 전국에 교회수가 116개 정도 이었다고 합니다. 이 교회의 교인들이 전부 자정 무렵에 다 교회로 나와 천사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얀 옷차림으로 나왔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하면서 난리를 쳤는데 그 때 훈령이 떨어집니다. 24일 자정은 맞는데, 그 시간은 서울 표준 시간이 아니라 이스라엘 표준 시간이라면서,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시차가 6시간이니, 그 다음 날 새벽 6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휴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다미선교회 사람들이 선교열정이 많아서 필리핀에 교회를 개척했고, 그 신도는 약 200명 정도 되었고, 이들도 똑같이 했답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도 똑같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광고에 하나님 오시는데 교통이 마비되어서 늦으셔서 못왔다네요. 결국 그 교통이 영원히 마비되어 하나님도 영원히 못 오셨습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일이 이 문명국가에서 일어났습니다. 2천년 교회 역사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서 있었습니다. 
휴거와 관련하여 사회가 뒤숭숭해지니까 검찰에서 사전에 법적 조치를 취했고, 조사에 들어갔죠. 그 내용은 교주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구속해 조사해 보니 수십억대의 재산을 모았던게 사실이었는데, 그것은 곧 오게 될 휴거를 믿고 있던 신도들이 집과 부동산을 팔아 헌금 한 것이었읍입니다. 그런데 교주인 이만희 회장에게 물어보니 신도들은 휴거에 참여하고, 본인은 휴거 후에 남아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백성을 구할 특별한 사명을 맡았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하여 돈을 모았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래서 이 교주는 검찰의 요청에 의해서 9월 25일자로 전 교인들에게 특별 하달을 합니다. "휴거는 오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라고. 하지만 신도들은 이미 휴거믿음이 강해 이 분의 후계자로 고등학생 하나를 교주를 뽑아 다시 휴거를 준비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후로 32 여명이 집단자살 사건을 일으킨 소위 오대양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구원파와 연관된 비슷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휴거이거나 오대양 사건이거나 그 족적을 따져 보니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가 공통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너무 살기 힘들고 무언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기적을 필요로 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기적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기적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사교집단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 모았으면 사도행전에 있는 대로 매일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모두 내어놓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교주 혼자 모든 것을 갖습니다. 이것은 어느 사이비 집단이나 비슷합니다. 나눔이 없는 착취입니다. 축적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모여서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상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하게 서로 좋아 모이고, 도와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을 잘못 악용한 집단들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독재자요 독재체제입니다. 종교를 빙자한 독재입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나눔이 없는 자본가, 착취자이며, 종교적으로는 이단 사설을 퍼트리는 사기꾼 행각입니다. 이것은 2천년 교회 역사에서 있어온 이단 집단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모이는 사람은 항상 사기 치는 기적 이야기를 잘못 믿고 이 집단에 들어왔습니다. 지혜도, 지식도 있을 텐데 그것이 통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적 욕망 앞에서는 모든 것이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상징이며, 표징이다"라는 것입니다.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님 나라는 이런 기적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기적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저도 기적을 행할 수 있으면 좋겠고, 기적의 이익을 보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여러분도 기적을 원하시지요? 아마도 기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이제 예수님의 기적을 한 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오천 명을 놓고 설교하시다가 저녁때가 되니 먹고 마실 음식이 없었습니다. 수소문 해봤더니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만 있었습니다. 모두 합쳐 일곱 개입니다. 이것을 모아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에 떡을 떼고 생선을 나누었더니 오천 명이 풍성하게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성경 본문에 보면 이런 기적을 보도한 두 가지 본문이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기사가 바로 그것인데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에 나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 인데 보리떡일곱 덩이와 물고기 몇마리를 가지고 사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먹은 청중의 숫자가 사천 명과 오천 명 어느 것이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두 기사의 상황이 달랐다는 것 입니다. 5천명을 먹이실 때는 유대 사람들이 청중이었고, 4천명을 먹이실 때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 사람들, 즉 헬라인들이 모인 곳에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두 기적의 상황과 청중이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숫자적으로 일곱입니다. 일곱은 완전 수 입니다. 그리고 열두 광주리는 유대 12지파 전체를 상징하고 동시에 남은 12 광주리는 전체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상징의 숫자입니다. 또 오천 명이라는 숫자도 가장 많은 수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지금은 오천 명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옛날에는 오천 명은 가장 많은 수입니다. 헬라인 사천 명에게 베푸셨던 이야기에서도 기적의 방식은 똑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들어 하늘을 향하여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세상의 작은 것도 풍성히 나누어 먹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적 기사가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그런데 잘 보셔야 합니다. 기적은 하늘에서 우뢰와같이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기적을 보세요. 물고기는 바다의 산물이며, 보리떡은 땅의 소출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땅에서 나온 소출과 바다에서 나온 물고기를 먹고 살아라고 주셨읍니다. 거기에 바다와 땅과 하늘의 은혜가 더해지면,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합하면, 그것은 모두 함께해야 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런 현장에서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그 기적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며, 사람이 먹고 마셔야 하는 기적입니다. 이 세상이 잘 되어야 하고, 이 세상과 사람이 축복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이니까요. 기적은 세상에서 세상이 아는 방식대로 이루어 집니다. 단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진실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세상이 부유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복지가 충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기적이라고 한다면, 기적에는 항상 창조주의 섭리가 함께 임해야 가능합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만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때에야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사람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원하면 땅과 바다와 모든 것에 주어지고 담겨진 하나님의 은총을 열심히 땀을 흘려서 받고 모아라.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라.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게 주시지만, 사람이 원하고, 기대하고, 간구하면 반드시 임합니다. 이런 기적의 이야기를 예수께서 꼭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이 땅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믿지 않고 땅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믿고 사람을 현혹합니다. 현혹당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땅 이외에서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서 "아브라함 품속"에 가면, 곧 하나님께 가면 그 때와 그곳에서의 생명의 기적은 하나님이 알아서 이루실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관심 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라고 목숨을 주셨으니 하나님 나라 시민처럼 땅에서 살아라. 하나님 나라를 땅에서 맛보며 살아라.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사명입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가 육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이제 구약본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기적을 경험했나요? 모세에 이끌림을 받은 백성이 광야로 나아 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집니다. 물이 없어 목말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사막 가운데 바위를 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고, 먹을 것이 없으니 아침에는 만나라 이름하는 쌀 알갱이가 땅위에 떨어 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져다 주셨습니다. 밤에는 하늘을 나는 메추라기를 고기로 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는 갈릴리 바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니먹을 것은 당연히 물고기지요. 그 대신 사막에서는 메추라기를 통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땅에 사는 만나를 가졌다 주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우주의 공중을 나는 메추라기를 잡아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때로 경험하듯 낙뢰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 땅을 위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주십니다. 주시는 분은 세상을 넘어서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이 땅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 이 사실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려고 기적을 행하셨고, 그것을 보고 경험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남은 자들은 너무 허탈하기도 하고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정열과 기다림이 너무 커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땅에 기적을 이루자. 하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 나라 이루면서 살자. 그래서 이런 희망과 결단으로 모인 것이 오늘 사도행전 모임늬 이야기입니다. 함께 모여 가진 것 다 내어놓았고, 누구하나 착취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찬송하고 기도하고, 선한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악용하고 자기 멋대로 만든 그룹이 소위 마르크스 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도행전 공동체와 일견 그 모습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이것입니다. 마르크스 주의의 방식은 교회가 썩었으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라며 공동체의 종교성을 아예 부정합니다. 종교가 아편이면 하나님은 아편 만드는 분이됩니다. 이런 하나님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그런 아편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삶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분께 항상 찬송하고, 경배하며 사는 삶입니다. 신이 없는 공동소유가 아니고, 신이 있는 공동소유입니다. 신이 없으면 신 대신 누군가는 대체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데올로기라 합니다. 신을 이데올로기화 했습니다. 아니 신의 자리에 이데올로기를 가져다 놓고 신처럼 절대화 합니다. 
성경말씀은 이데올로기와는 다릅니다.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정치 독재도 필요 없습니다. 경제적 착취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같이 사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만든 그룹과 체제가 있는가 하면, 또 종교집단이나 교회를 빙자한 사이비 교회 내에 이단처럼 기생하는 개별적인 체제와 집단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공동체의 기적은 땅과 하늘이 항상 합해서 나타납니다. 어떤 이유로도 땅이 하늘을 빙자하여서,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빙자하여서, 제멋대로 제 이익을 위하여 만든 것은 땅에 잉태할 하늘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공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남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당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는 엄청난 물질적 축복의 상징입니다. 단지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그것대로 그것을 소유한 아이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누었더니 주인 아이는 물론 모든 이웃들이 함께 배불리 먹고도 남음이 있는 축복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물고기와 떡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물고기 한 마리 가지고 계십니까? 보리떡을 매일 먹을 수 있는 분도 있으시지요? 일용할 양식을 충분히 가지고 계시죠?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답니다. 축복은 나누어야 한답니다. 나눌 때 하나님의 은총이 나눔 속에 임하여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을 행하게 해주십니다. 나눔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독점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가까이 오시지 않습니다. 나누는 곳에 사랑, 평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합니다. 떡을 나누어 오천 명의 입에 들어가게 한다면 나누는 곳에 당연이 은총이 임해야지요, 하늘이 임해야지요. 
여러분 지금은 물고기나 떡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엄청난 재능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특허권 가지고 계십니까? 그것을 혼자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그것대로도 축복이지만 특허는 나누어야 합니다. 특허가 개발되어 좋은 상품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특허권이 나누어지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의 나눔이 있습니다. 나눔이 없는 곳에는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미워서가 아닙니다. 혼자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좋은 노래 할 수 있습니까? 좋은 책을 쓸 수 있습니까?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까? 남을 도울 수 있는 건강이 있습니까? 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는 물질적 여유가 있습니까? 남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따뜻한가슴이 있습니까? 나누세요. 나눔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도움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곳에 행복이 열려집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이 너무나 훌륭하고 좋습니다. 오천 명 또는 사천 명의 숫자보다도 "나누어야 한다"는 선교와 봉사의 복음입니다. 나눔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십니다. 여러분 진실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나눔의 철학, 신학을 어디서 실천하셨는지 아십니까? 그 분은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너희들 보고 나누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누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차적 나눔은 자기 자식인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자기 나눔의 출발입니다. 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죄악을 함께 담당하신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악을 다 사해주시는 방식으로 그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몸을 나누고, 혼을 나누고, 인성을 나누고, 신성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가 찬송을 부르기 위해 함께 예배로 모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나눈 내 몸을 오늘도 그대들과 나누고 싶다"고. 나눔이 있는 곳에 가면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셔서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나누어 주신 주님의 몸과 주님의 보혈을 우리가 나누어 먹고 마시면, 나누는 속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의 은혜가 풍성하게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몸과 보혈에 담아 기꺼이 나누어 주겠으니 와서 먹고 마셔라고 하십니다. 당시 성만찬은 온 일상생활 속에서 행해졌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 테니 이 은혜를 받고 나누어 가져라 하시면서 성만찬의 은혜를 선물로 주셨읍니다. 나눔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은혜 받고 싶으세요? 하나님의 축복 받고 싶으세요? 나누세요. 나누면 빈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채워져 또 나누게 하십니다. 세상이 행복해 집니다. 나눔이 없는 세상은 각박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누시는 분, 신성도 나누고, 인성도 나누고, 은총도 나누셨습니다. 은총을 받은 여러분, 다시 받은 은총을 나눕시다. 나눠야 할 사람, 현장, 세상, 너무 많습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가서 눈물을 닦아주고 그 자리에 웃음을 선사함으로 기쁨을 나누세요. 죽음이 있는 곳에 가서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으로 삼켜 나눔을 행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누어라. 나는 그곳에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함께 있겠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귀한 재능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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