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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의 길위의신학] 치과에서 있었던 일

차정식·한일장신대 교수(신약학)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수술받은 지 한 주가 지나 실밥 뽑으러 치과에 갔다.
 
문 원장이 치아 청소 좀 하고 가라고 해서 또 기계인간처럼 입 벌리고 누웠다.
 
치위생사 아가씨가 마스크 쓰고 다가와 작업을 개시했다. 얼굴에 보호대를 덮어씌우더니 쟁쟁거리는 칼날이 요란한 기계음을 이어갔다. 시큼거리는 감촉이 전해졌다.
 
세밀한 손놀림으로 칼날이 치아와 치아 사이를 훑으며 지나는 무료한 시간의 긴 흐름 속에...... 눈알을 굴리다가 나는 초록색 보호대 틈바구니로 비치는 치위생사의 머리카락 몇 올에 주목하며 위안을 삼았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전등 불빛에 반사된 그의 머리카락은 황금빛 후광을 만들며 몸이 움직일 때마다 싱그럽게 나풀거렸다. 딱딱하게 경직된 포즈로 입 벌리고 누워 있어야 하는 이 코믹한 기계인간의 처지에서 그 머리털 몇 올의 부드러운 동선은 요나의 박넝쿨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안식의 여운을 선사했다.
 
각도가 비틀려 공간이 조금 더 생기면서 나는 그의 두 눈동자까지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 두 눈은 떡 벌어진 기계인간의 불쌍한 입속으로 시선을 쏘아댔고 안경 벗어 희미한 내 시선은 하늘에 떠 있는 그 신기한 두 눈으로 구원의 희망을 쏘아올렸다.
 
뒤집힌 구도로 근접거리에서 쳐다본 그 눈은 쌍꺼풀이 자연스러운 예쁜 상현달의 모양이었다. 전등불빛이 눈자위 주변에 달무리처럼 뿌연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구원론적 이미지를 떠올리며 바닥에 넙죽 깔린 기계인간이 메마른 상상력에 기대어 간신히 하늘의 환상적인 구원을 갈구하며 발버둥치려는 순간,,, 개뿔?!
 
초록색 보호대가 획하니 당겨지더니 내 두 눈을 덮어 시선의 권리가 암흑속에 매장돼버렸다. 내 또랑또랑한 시선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걸까? 아니, 내 눈에 물이 튀지 않게 보호해주려는 전문적인 직업윤리의 발로였겠지.
 
제길헐~ 이 모든 기계인간의 딱한 신세가 어리석게도 쇠젓가락을 있는 힘 다해 깨물었던 탓이다.(사고 이후 집안의 쇠젓가락은 다 폐기처분되고 나무젓가락으로 대치된 터라 자료사진은 포크로 대신해 올린다.)
 
그래도 잡된 무지렁이 백성이 더 잡되게 욕망하듯이, 비루한 기계인간도 더러 황홀한 생명의 아름다움에 끌려 천상의 구원을 사모할 시선의 권리는 있을 법한데, 일상적 에로티시즘의 현장엔 너무 장애물이 많다. 
 
싱싱해야 할 시선의 권리는 그래서 게슴츠레한 눈치보기로 타락하거나 '눈 깔아!' 엄포 놓는 독재의 권력 아래 짓눌려 신음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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