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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탄허록(呑虛錄)을 읽고

<성서와 문화>, 2012. 여름호 기고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2012년 봄이 한창이던 4-5월에 한국출판계는 보기드문 귀한 책 「탄허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람과 자연에 참 휴식을 제공하려는 뜻을 출판사의 사업목표로 삼는 한겨례출판사 ‘휴’(休)에서 간행한 것이다.

탄허스님(1913-1983)의 고명하신 법명과 높은 학승의 이름을 소금 유동식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듣던 필자로서는 진주보석을 얻은 기쁨으로 단숨에 탄허록을 읽었다. 요즘 종교계가 세상의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소위 종교계에 몸담고 70년을 살아온 필자로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으며 몇가지 소감과 감회를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만남이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사람을 한자로 적으면 인간(人間)이라고 표기하는 연유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탄허스님 또한 그렇다. 사람나이 20세 전후엔 성정이 발달하여 이성(異姓)을 찾고 혈기가 한창 왕성한 시기이지만, 동시에 사람은 영물인지라 인간과 만물의 근원을 묻고 진리를 찾아 목말라하는 눈뜸의 시절이기도 하다. 본래 이름이 김택성(金鐸聲)이던 청년이 구도의 간절한 염원이 연줄닿아 오대산 상원사의 큰 스님 한암스님을 은사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제자로 받아드려진 그때 나이도 22세(1934)였다. 물론 만남만으로는 그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박옥(璞玉)이 곧 보석은 아니다. 모든 씨앗이 곧 거목은 아니다. 박옥은 다듬어져야 하고 씨앗은 움터서 비바람을 견디고 자라야한다. 불교수행의 두 흐름인 정혜상수(定慧雙修) 곧 묵언정진의 참선수행과  높은 깨달음의 경전공부를 병행하여 마침네 보석으로 빛나고 거목으로 뭇 생명체의 쉼터 그늘로서의  탄허가 탄생 되었다.

탄허스님은 스스로 늘 겸허하게 말하기를 자신은 “본래 근성이 노둔(魯鈍)해서 문장지학(文章之學)에 힘쓸 여가가 없었다”고 하지만 일찍이 유교와 노장학에 깊은 공부를 하신 것을 우리가 듣고 안다. 유교와 도학이 말하려는 구경의 경지가 궁극적 자리에서 보면 불교가 말하려는 그것과 같은 자리임을 탄허는 잘 알았다. 그렇지만, “저술보다는 사색, 사색보다는 좌망(坐忘)을 노력해왔다”는 탄허스님의 말을  기독교인들은 특히 경청 해야할 충고로서 삼아야 하겠다. 탄허스님은 우리시대 최고의 선사(禪師)중 한분이지만,  원효와 의상대사 이래로 최대 불교의 학문적 결실로 평가받는 『신화엄경론』을 1975년에 간행함으로서 학승으로서의 불멸의 공로를 남기셨다.

손등과 손바닥  관계처럼 함께 가는 한국불교의 두 맥이 선종(禪宗)과 화엄종(華嚴宗)이라고 말들 하는데, 선(禪)의 근본정신이랄가 근본자세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보통사람들에게 들려오는 정형적 모범답안은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고  듣고 자란다. 그런데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이 어구를 흔히 오해하여 일체의 문자, 이론, 저술물, 심지어 경전까지도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요 껍데기 이므로 모두 버려야한다는 오해를하는데, 탄허스님은 그 점을 준엄하게 바로잡는다.  『육조단경』에서 가르치신 혜능선사의 본뜻은 “불립문자는 문자가 쓸대없다는 말이 아니라, 깨닫는데 문자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경전이나 진리를 비방하면 그 죄가 무겁다”고 바르게 가르치시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탄허스님의 ‘불립문자’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타산지석 삼아 오늘날 기독교계를 뒤돌아 보면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서구적 현대신학의 고도로 발달한 새로운 학문이론과 경전주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수백명 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전공한 학문방법론과 이론에 매여있어서 ‘영성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교인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학문업적이 교회강단에서 복음적 설교말씀의 ‘생수와 떡’으로 육화되지 않는다. 다른한편, 오늘 한국교회의 주도적 교회강단이 값싼 감정주의와 도덕적 규범주의와 경직된 교리주의에 사로잡혀 ‘진정한 은혜’가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지성을 무시하는 말씀강단이나 영성을 무시하는 신학지식의 남발이 도리혀 교인들의 심령을 죽이는 독이 되고 있다.

탄허록을 읽으면서, 무릇 모든 깊고 높은 종교의 진리는 매우 역설적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절감한다. 종교의 위대성은 이 ‘역설적 진리’를 깨닫고 삶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아마 종교인 90% 이상은  이 역설적 진리를 곡해하는데 발생하는 것이다. 예들면, 탄허스님의 스승인 한암스님이 해인사에 계실 때 찾아가 경허스님의 법문을 들던중 한암스님의 눈을 확연하게 열어준 법문의 요체는 이러했다.

 “무릇 현상을 지닌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실상이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위대한 부처님의 설법의 핵심이요 불교를 불교되게하는 삼라만물의 ‘인연생기실상’(因緣生起實狀)을 설파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본래정신에서 확철하지 못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단 한번의 삶을 ‘허망한 환상’으로 치부하면서 불교를 욕되게 하는가?   탄허록에는 불교적 역설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독자를 돕기위해, 뭇 선사들의  선사이신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다음같은 말을 동시에 소개한다. “차라리 생사 속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하면서 도를 닦을 지언정 소승(小乘) 의 적멸(寂滅)에 파묻혀 자리(自利)만을 구하는 해탈은 하지 않겠다”. 

위에서 인용한 두 말씀은 얼른 들으면 정반대 입장을 피력하는듯이 들리지만, 깊게들으면 불교적 진리의 핵심을 갈파하는 ‘역설적 소리’이다. 보디사트바(菩薩)의 자비행은, 깨달음을 얻고 난후의 해탈한자가  아직 미몽과 고해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중생에게 베푸는 고답적인 연민이나 시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깨달음(프라쥬나)과 자비행(카루나)은 동전의 앞뒤요, 손등과 손바닥 관계요, 음전기와 양전기의 관계다.  그 둘은 동시적 관계요, 함께 구르는 바퀴요, 함께 퍼덕이는 새의 두 날개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성경말은 정통이라고 동의하다가도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 큰 이단사설이나 만난것처럼 경계하는 한국 기독교가 문제가 아닐까?  

탄허록에는 기독교에 관한 말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저런 경우에 기독교에 관하여 언급하는 데목에서 말씀하려는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는 않다. 기독교도 하나님을 말하려는 본래적 자리는 불교나 유교나 노장의 깊은 자리와 같다고 탄허스님은 본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첫구절은 하나님이 시공간의 제약 속에 갇히거나, 시공간의 논리로서 변증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천당지옥론을 펼치면서 하나님을 특별한 우주시공간에 자리잡은 ‘초월적 타자로서의 인격신’ 개념에 기독교인들이 너무 집착하면, 그것은 ‘유치원 학생수준의 법문’에 떨어진다고 경고한다. 지방방송 개별회사들이 ‘기독교 영상매체 방송국’이라고 이름을 내걸고,  ‘TV 사설 기독교 방송국’에 불과한데 운영비를 ‘선교비’명목으로 많이 담당하는 목사님들을 등장시켜 설교하는 것을 들어보면 탄허스님이 지적하는  ‘유치원수준의 법문’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을까? 

2012년 음력 4월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의 일간신문은 종교가 이 땅의 빛과 소금과 진리가 되어야하건만, 신문사설을 통하여 최근 불교조계종의 지도자계층의 비리척결 자세에 대하여 아예 논설에서 준엄한 충고를 하고 있다. 사회면에는 한국 기독교의 성장을 상징하고 대변하여 왔다고 회자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원로목사와 그의 아들 조희준씨에 대하여, 해당교회에서 구성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넓은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무리 종교단체라고 하더라도 공적단체인 공교회에 대한 지도자 가족의 배임과 비리행각 책임을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탄허록을 다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난 후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엎치락 뒤치락 잠을 설치면서 새벽 동터올 무렵까지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질문은 한가지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던 지난날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녀를 열명 가까이 낳고 기르면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무릅쓰고 자녀를 모성으로 길러내고 교육시켰다. 그들은 불교경전도 모르고 기독교 성경교리도 몰랐다.   그러나, 진리 파수꾼이라  자처하고  성직자의 법복입고 존경받는 스님 · 목사 · 신부보다 ‘진리와 사랑이신 하나님과 법신불’에 우리들의 그 어머니들이  한 몸되어 살았던 분들이 아니었을까?

자신들이 ‘생보살’이거나 ‘성녀’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채 몸으로 그저 그렇게 살고간 ‘익명의 보살이요 익명의 육화한 작은 그리스도’ 가 아니었을가? 종교계의 정화는 일차적으로 이땅의 종교계 성직자들 모두가 ‘익명의 보살들과 익명의 작은 그리스도’앞에 무릎꿇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성실한 낮아짐과 자기비움에서 시작해야 하리라. (2012년 사월초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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