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산티아고 순례기] Day 31.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입력 May 25, 2019 09:12 AM KST

페레이로스(Ferreiros) -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7시간 30분 (32.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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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안개가 자욱할 땐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야생동물이 나타나거나 길을 잃을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때가 가장 재밌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치 하얀 눈밭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과 같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다 여기지 마시길.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가 멈춰준 만큼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다.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아침, 높은 습도로 인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비로 젖지 않음에 감사하며 힘차게 한 걸음 내딛어본다.

오늘 머물 목적지인 '팔라스 델 레이(Palas de Rei)' 중간쯤 되는 어느 마을 Bar에 들러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한적한 길 위에 딱 하나 있는 Bar여서 그런지 그동안 오가며 스친 순례자들이 모두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과 잠깐의 인사와 담소를 나눈 뒤, 서로 다른 보폭과 목적지로 인해 다시 헤어짐을 갖는다. 여전히 이곳에선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연습이 한창이다.

굉장히 길고 높은 다리를 지나자 요새 같은 마을 '포르토마린(Portomarín)'이 나타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자들의 첫 출발지는 다양한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합류하는 곳이 바로 이곳 '포르토마린'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실제 이곳에 도착해보니 부쩍 많아진 순례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콤포스텔라에 도착해 순례 증명서를 받으려면 최소 100Km는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길에서 마주치는 그룹의 단위도 점점 커간다. 가족 단위도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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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길고 높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마을, 바로 ‘포르토마린(Portomarín)’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이 다리로 올라가면 마을 중심으로 향하게 된다. 마을로 바로 입성하지 말고 계단에 다 오른 뒤 뒤를 돌아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학생들은 수학여행 온 것처럼 신이 났는지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걷기도 하고 어깨에 멘 스피커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기도 한다. 평소 자유와 열정을 참 긍정하는 나이지만, '함께' 만큼 '고독'도 중요한 이곳에서 다른 순례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규모가 있거나 개성이 강한 순례자 그룹을 만나게 되면 걸음 속도를 높여 그들을 앞지르곤 한다. 지나친 유쾌함 속에 고요함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이 길의 유래와 이름이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첫 번째 순교자였던 '야고보(산티아고)'에서 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금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 가톨릭 신부가 들려준 '고요함'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타인들의 넘치는 열정과 유쾌함이 다시 고독을 그리워하게 만든 것이다. 신부는 종교인이 신앙생활을 할 때, 왜 고요에 머무는 것이 중요한지 들려주었다.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의 한 대목이다. 그는 하느님, 곧 신을 만날 기회는 고요 속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마음의 귀로 듣고 그것을 심화시키세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세요. 하지만 이 일을 위해서는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듯이, 하느님은 강하고 거센 폭풍이 아니라 고요하고 부드러운 바람의 속삭임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니까요."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문학의숲, p.98)

고요해야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내면 교사'라 불렀고 다른 누군가는 '내면의 빛'이라 했으며 또 어떤 이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기독교 전통 안에서 '신의 음성' 혹은 '하느님(하나님)의 음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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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임현수 작가)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이렇게 손을 꼭 붙잡고 걷는 순례자들을 보게 된다. 만일 다시 산티아고 순례를 오게 된다면, 그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와볼 계획이다. 다투기도 많이 다투겠지만 나쁜 점보다는 확실히 좋은 점이 많은 여행임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고요한 상황에 놓였다고 해서 누구나 고요가 주는 선물을 획득할 수 있는 건 아님을 안다. 하지만 반대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무언가에 몰두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고요가 건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사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은행나무, p.205)

정말 그렇다. 고요함은 매우 중요하지만, 혼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고요가 주는 선물을 획득할 보장은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지 혹은 내 마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 얼마나 활짝 열려 있는지에 따라 고요가 건네는 선물의 양도 정해질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혼잡함 속에서도 수도사처럼 고독한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물론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사람들이 많으면 많아졌지 줄어들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 안의 간절함과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을 닫아두진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펼쳐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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