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이정훈 교수 포스트모더니즘 공격, 논쟁 포인트 잘못 잡은 것"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신익상 박사편

입력 Mar 26, 2019 07:42 AM KST

본지는 올해 특별기획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신앙을 실천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현실 속 신앙과 실천 사이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한편 그 벌어진 간격을 좁힐 수 있도록 돕는 신앙성찰적인 내용을 담으려 합니다. 행동하는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시간에 다름 아닙니다. 그 첫 편으로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신익상 박사를 만나봤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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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신익상 박사(우)와 장효진 객원기자(좌)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Q: 요즘 개신교가 갈수록 우경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보수 인사로 알려진 전광훈 목사가 한기총의 대표가 돼서 극우적인 주장들을 하고 있고, 울산대 법대 교수인 이정훈 교수는 불교에서 개신교로 회심을 해서 최근에 강연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정훈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들에 반대하여 그러한 사상들이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이고, 이러한 사상들을 거부해야만 기독교인들이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러한 현상들이 개별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흐름으로 읽힙니다. 개신교의 우경화의 흐름으로 말이죠.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신익상 박사(이하 신): 이정훈 교수님이 개종을 했군요. 그런데 이 시대에 안 맞는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포스트모더니즘을 문제 삼는 것에 관해 요점만 간략히 말씀드리면 논쟁의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분이 아직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 개신교 지성계가 얼마나 시대에 뒤처져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물간 이론이에요. 이미 오래 전에 바디우나 지젝이 주체 문제를 다시 제기한 바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상대주의니 유물론이니 하는 피상적인 말들을 단순화해서 갖다 붙이면 다 되는 양 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공격하면서 마치 자신은 주체성을 지키고 있는 양 행세하면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죠. 이미 일부 기독교인들이 주체 문제를 다시 활발하게 논의한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말이에요. 더욱이 제가 아는 한 기독교에 정체성이란 게 있다면 그건 끊임없이 기존 자신의 정체성을 허물고 새롭 거듭나는 정체성이라고 봅니다. 결국 시장 자본주의 문제를 다시 짚게 하는데요. 생각하는 인간으로 교육하지 않는 무한경쟁 사회.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그런 시대에 뒤떨어지는 주장에 현혹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일자리조차 구하기 쉽지 않고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있잖아요.

Q: 이정훈 교수 같은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주체성을 잃고 있는 것을 되려 그 원인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연결시켜 정체성 문제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신: 맞습니다. 개신교도들. 그리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주체성 상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으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상대로 논쟁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상대로 논쟁해야 만 하는 것이지요. 추가로 전광훈 목사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그런데 전광훈 목사가 누구지요?

Q: 과거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화제의 인물입니다.

신: 아 그 사람 말이군요. 그 사람에 관해서도 간략히 이야기해보죠. 이제 더는 반공과 같은 프레임으로는 기독교 진보 세력에 맞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한기총 인사들은 이미 반공에서 이슬람 혹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프레임을 바꿔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한국사회에서 이슬람과 성소수자 문제는 실질적으로도 현재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기때문에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늘 정체성을 걱정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 생산 구조를 영속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내세우곤 하는데, 그건 '남한의 종북 좌빨'처럼 가상적이거나 '이슬람과 성소수자'처럼 사회 구조적 약자들이거나 한 것 같습니다.

Q: 그럼 이야기를 이슬람 문제나 성소수자 문제로 돌려보지요. 광화문 광장 앞을 지나가다보면 반이슬람, 반동성애 집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신학은 실천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기독교 근본주의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일까요?

신: :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 답할 자격이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신학은 최대한 실증적인 방향으로 향해야만 합니다. 사회과학과도 긴밀히 연계되어야만 하고 빅데이터의 통계분석도 활용해야만 합니다. 실제로도 신학을 연구할 때 빅데이터의 통계자료들을 활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어떠한 답을 내리기 전에 먼저 사회의 흐름을 최대한 정확히 읽어내야만 해요. 그래서 질문 자체도 머릿속에서 상상해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과 대면해서 생산하고, 그 질문에 따라서 신학적인 모색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로 일전에 반공프레임에서 소수자에 대한 프레임으로 전향되었다고 드렸던 말씀도 통계 자료에 근거한 이야기였습니다. 통계가 없었다면 반공프레임에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야 했겠지만 통계는 우리가 반공보다는 소수자 프레임에 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신학은 신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신을 실천하는 것은 그 시대의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약자'라는 말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계급으로 아예 약자가 지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매 사건마다 약자가 누구인지를 새롭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신학은 그들의 편에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이슬람과 성소수자가 사회적 논쟁 문제로 등장한다고 할 때, 사회 구조적으로 약자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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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신익상 박사가 인터뷰 중 울산대 이정훈 교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모습.

Q: 신학이 약자의 편에 서서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말씀은 강하게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신학은 보편적입니다. 신학은 모두를 보듬어야만 합니다. 극우적인 보수 기독교인들, 즉 약자들을 공격하는 그러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학은 그들을 버려야만 하는 것일까요?

신: 신학이, 그리고 교회가 그들을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신학을, 그리고 교회를 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Q: 그러네요! 그들을 전도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대다수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참 설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갈수록 개신교 평균 연령은 높아져만 가고 있고요.

신: 저는 전도의 문제로 보지는 않아요.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런 분들 뒤에는 늘 소수의 목사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프레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그런 소수의 목사들을 설득하면 되는 일 같은데, 그것이 쉽지는 않아 보이고, 제가 선뜻 할 수 있는 일 같지도 않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우리가 큰 기획을 가지고 시도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모두가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고, 서로 간의 성찰들을 요하는 일이고요. 한마디로 모험입니다.

Q: 맞는 말씀 같습니다. 그 모험을 해야만 하는데요. 그 모험은 일단은 그런 공격적인 목사들과도 대화를 시도해보는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신: 이미 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목사들은 성소수자들을 윤리적으로 규정합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단정하는 것이지요. 아울러서 병리학적으로도 규정합니다. 동성애를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단정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상대를 이미 규정한 이들과 대화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예수 시대 예수의 적대자들과 정확히 같은 모습들 아닌가요? 그런 상대들과는 예수도 대화를 쉽게 잇지 못했습니다. 대화를 잇기는커녕 죽임을 당했잖아요. 우리가 예수를 따르고자 한다면, 예수의 신앙을 간직하고자 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때로는 대화를, 때로는 싸움을 시도해야 하겠지요. 일단은 대화가 가능한 경우부터 서로 이야기 나누어보고 서로의 성찰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성공할지 혹은 아주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 그저 신학의 모험, 혹은 신앙의 모험일 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교수님의 역할도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학교에서 양성해 내는 것, 그런 것을 교수님께서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 서글픈 것은 대학생들 자체가 이미 약자입니다. 그러한 사회적 약자인 우리 젊은 세대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창조성으로 사회적 약함을 스스로 뛰어넘기도 하지요.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1:27)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Q: 그렇군요. 질문을 드릴수록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계속 드러나는데요. 그래도 오늘 말씀은 이만 끝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정말 감사드리고 대학의 이미 '약자'인 대학생들과 함께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신학적 모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신: 네. 기자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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