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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말말말] 'SKY캐슬' 결말과 희생양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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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JTBC '스카이캐슬' 방송화면 캡처)
▲혜나의 죽음과 그 죽음에 따른 대가로서 우주의 누명은 영재 엄마의 죽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던 '스카이캐슬' 주인공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내 회심의 발판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영재 엄마의 죽음과는 달리 혜나의 죽음은 혜나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 죽음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재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쫓다가 파멸에 이른 것이라면 혜나는 욕망의 구조에서 파생된 희생양이었으니 말이다.

혜나가 죽었다. 'SKY캐슬'에서 혜나의 죽음은 극의 반전을 꾀하는 중요한 장치였을 것이다. 혜나의 죽음과 그 죽음에 따른 대가로서 우주의 누명은 영재 엄마의 죽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던 'SKY캐슬' 주인공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내 회심의 발판이 되기까지 했다. 물론 영재 엄마의 죽음과는 달리 혜나의 죽음은 혜나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두 죽음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재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쫓다가 파멸에 이른 것이라면 혜나는 욕망의 구조에서 파생된 희생양이었으니 말이다.

혜나의 죽음은 그러나 적어도 'SKY캐슬'이라는 드라마 속에서는 개인의 '불행한 죽음'이자 '안타까운 죽음'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다. 혜나의 죽음 자체에 카메라 앵글이 머무르지 못했고 죽음 자체의 의미가 손쉽게 퇴색돼 버렸다. 혜나의 죽음은 실제로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한 개인적 수단으로 기능하기에 바빴다. 혜나의 죽음은 줄곧 개인의 불행 정도로 그려졌고 그 죽음은 주인공 개개인의 회심을 위한 좋은(?) 수단에 불과했다. 회심에 따른 변화와 실천을 주인공 개개인의 선택에만 맡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개인적 선택도 입시경쟁이라는 지옥으로부터의 회피나 도피에 그쳤다.

'SKY캐슬'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입시경쟁 구조에 문제제기를 한 숭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SKY'와 '캐슬'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확고히 지켜내는 스토리 구조를 보여줬다. 'SKY캐슬'은 비록 가시적인 피라미드 모형은 밖으로 내다 버렸다손 치더라도 입시생들과 입시맘의 정신세계 속에 군림하고 있는 진짜 피라미드의 꼭대기 'SKY'와 '캐슬'이란 환상을 지워버리지 못했다. 회심한 주인공들, 특히 예서와 예서 엄마는 불가피하게 '캐슬'을 떠났지만 방식만 달리했을 뿐 여전히 'SKY'를 지향했으며 그들에게 피라미드 꼭대기 상류층의 삶인 '캐슬'은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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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JTBC '스카이캐슬' 방송화면 캡처)
▲혜나의 죽음은 그러나 적어도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 속에서는 개인의 '불행한 죽음'이자 '안타까운 죽음'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다. 혜나의 죽음 자체에 카메라 앵글이 머무르지 못했고 죽음 자체의 의미가 손쉽게 퇴색돼 버렸다.

'SKY캐슬'이 혜나의 죽음에 좀 더 머무르면서 그 죽음의 의미를 좀 더 깊이 파헤쳤다면 어땠을까? 혜나는 'SKY캐슬'의 원주민이 아니었다. 혜나는 이방인이었다. 이방인 혜나는 'SKY캐슬' 원주민의 광기어린 폭력의 대상이 되어 희생당했다. 'SKY캐슬'은 입시경쟁, 아니 모방경쟁으로 들끓는 욕망의 공간이었다. 사실 지라르의 말처럼 인간은 타자가 욕망하는 법을 모방함으로써 욕망을 배운다. 'SKY캐슬'의 주민들은 영재 엄마가 추구한 욕망의 대상을 쫓아 저마다 모방욕망을 불태웠다. 모방에 따른 이들의 경쟁관계는 어느새 적대관계로 돌아섰고 그 갈등이 심화되어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고 그 희생양은 다름 아닌 'SKY캐슬'의 이방인이었던 혜나였던 것이다.

희생양은 고대로부터 인류가 모방욕망과 경쟁 끝에 해체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채택한 종교적 제의로 나타났다. 대개 희생양은 공동체를 교란시키며 불안을 제공하는 원인자로 여겨지는데 'SKY캐슬'의 혜나도 그랬다. 위기의 공동체는 그들의 분노와 원한 그리고 광기를 특정 개인에게 집중하면서 희생양을 만들어 냈는데 아이로니칼하게도 이러한 거룩한(?) 폭력을 통해 그 공동체는 잠시나마 정화되고 평화를 되찾았다. 'SKY캐슬' 원주민들이 이방인 혜나의 죽음으로 일시적으로 '캐슬'의 평화를 찾은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으레 그랬듯 이러한 희생양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곧잘 잊혀졌다. '캐슬'은 모방욕망과 경쟁으로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또 다시 제2,제3의 이방인 혜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줄도 모른다.

희생양 제의의 본질은 희생양에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데 있다. 각도를 달리하면 자기의 욕망 속에 감춰진 온갖 더럽고 추한 모습들이 희생양을 통해 은폐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숨기고 싶은 더럽고 추한 욕망이 희생양에 전가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그때부터 희생양을 대상으로 거침없이 폭력을 가한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정의고, 거룩이었다. 중세 횡행했던 마녀사냥도 같은 이치였다. 사실 이것은 그들만의 착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2, 제3의 혜나의 죽음을 막으려면 이른 바 희생양 메커니즘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드라마 속에서나마 실현될 수 있는 결단의 행동이라면 "내가 혜나다!"라는 피켓을 들고 교내에서 시위를 벌이는 입시생들과 입시맘들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희생양을 자처할 때야 비로소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으니 말이다. 'SKY캐슬'의 희생양 혜나의 죽음에서 이어진 결말이 아쉬운 부분이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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