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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리뷰] 양심적 병역거부자 데스몬드 도스 그린 <핵소고지>
대체복무제 길 열린 대한민국, 데스몬드 도스 활약상에 주목하라

입력 Jul 02, 2018 08:15 AM KST

총을 들지 않고도 전쟁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사뭇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린다. 전쟁터가 살육이 난무하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제77 보병사단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던 데스몬드 도스(1919~2006)는 총을 들지 않았음에도 전쟁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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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판씨네마(주))
집총을 거부한 데스몬드 도스의 활양상을 그린 전쟁영화 <핵소고지>.

호주 출신 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은 2016년 그의 활약상을 영화로 만든다. 그 영화가 바로 <핵소고지>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군과 일본군은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핵소고지도 그 중 한 곳이었다. 영화에서 미군 병사들은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올라 일본군과 전투를 치른다. 영어 단어 '핵소(hacksaw)'는 '쇠톱'이란 뜻으로, 절벽 모양이 흡사 쇠톱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참고로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 가는 길목이다. 따라서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면 곧장 일본 본토를 넘보게 된다. 미군이나 일본군 모두 이 섬에서 물러설 수 없다. 미군과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유도 오키나와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영화 <핵소 고지>의 전투장면은 멜 깁슨의 전작 <브레이브 하트>, <아포칼립토>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신체절단이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하다. 위생병 데스몬드 도스(앤드류 가필드)는 이런 끔찍한 현장에서 홀로 남게 된다. 도스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영웅적인' 활약을 펼진다.

이 대목만 보면 흔한 할리우드의 전쟁영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는 특이한 영웅이다.

집총 거부한 전쟁영웅 데스몬드 도스

버지니아 린치버그 출신인 도스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한국에선 흔히 제칠안식교라고 한다 - 글쓴이) 신도다. 그는 입대 전 제지공장에 다녔다. 전쟁이 터지자 고향 친구들은 하나 둘 입대한다. 그가 다니던 제지 공장은 군수업체로 지정됐기에 그는 입대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전쟁터로 떠나는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어 입대를 결심한다.

그는 왜소했지만 군사훈련을 잘 소화해냈다. 어린시절부터 고향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체력을 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총 훈련이 시작되자 이를 거부한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휘관 잭 글로버 대위(샘 워싱턴)는 지휘관으로서 예외를 용납할 수 없다며 도스를 다그친다. 상부는 노골적으로 전역을 압박한다. 함께 입대한 동료들은 그에게 집단 구타를 가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군법회의에 회부되고야 만다. 이런 와중에도 도스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가 집총을 거부한 데 대해 비단 종교적 이유만은 아닌 것으로 묘사한다. 1차 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 톰 도스(휴고 위빙)은 전쟁의 기억을 잊지 못해 매일 술에 취해 산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폭행했고, 아들 에드먼드는 이런 아버지를 이해 못한다. 또 어린 시절 동생을 거의 죽음으로 몰아갔던 기억 역시 그를 지배한다. 여기에 제칠안식교의 교리도 영향을 미친다.

데스몬드 도스는 이런 이유들로 해서 집총을 거부한다. 군 당국은 그를 법정에 세운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버지 톰 도스는 아들의 구명에 나선다. 아버지의 구명 덕분이었을까? 그는 감옥행을 피했고, 의무병으로 오키니와 전선에 투입된다.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전선에서 동료 75명의 목숨을 구한다. 미군 당국은 그의 활약을 기려 군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마지막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글로버 대위는 휴식을 취하던 도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동료들이 함께하기를 원한다며 다시 전선에 나가줄 것을 설득한다. 도스는 글로버 대위의 설득을 받아들여 다시 참전하기로 결심한다.

다시 절벽 앞에 선 글로버 대위는 진격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도스가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때 상부에서는 군 특유의 위압적인 어조로 진격을 명령한다. 글로버 대위는 채근하는 상부에 이렇게 답한다.

"도스 일병의 기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각자의 자리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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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판씨네마(주))
<핵소고지>의 주인공인 위생병 데스몬드 도스는 총을 들지 않았음에도 영웅적 활약을 펼친다.

위에서 <핵소고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쓴 이유는 이렇다. <핵소고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그가 종교적 이유만으로 집총을 거부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상부로부터 거센 탄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굽히지 않았고, 결국 전쟁 영웅으로 거듭났다. 물론 영화가 그린 도스의 활약상이 다분히 미국 중심적인데다, 근본적으로 반전 평화의 메시지는 빠졌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는 오래도록 금기 사항이었다. 아마 남북분단과 오랜 군사정권의 지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집총을 교리적으로 거부하는 종교 분파인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2016년 10월 국방부가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입영 및 집총거부자 현황' 자료를 살펴보자.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총 3,735명이었다. 이 가운데 98%인 3,709명은 종교적 이유(여호와의 증인)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나머지 26명은 신념 등 기타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

그리고 2016년 8월 31일 기준 재판에 회부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3,053명이며, 재판 계류 중인 535명을 제외하고 형확정자는 2,518명이었다. 형 확정자 가운데 2,491명은 징역형에 처해졌다. 나머지는 무혐의 10명, 집행유예 9명, 기소유예 7명, 벌금 1명 등의 처분을 받았다. 요약하면 2천 명이 넘는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종교적 이유 때문에 감옥에 가는 셈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군이 아닌 공공·사회복지 분야 등에 투입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 불안정한 안보상황 △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가 대다수인 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특정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기 때문에 타 종교와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해 왔다.

그러다 지난 달 28일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그러면서 국회에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종교 등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고 본다. 일부, 특히 여호와의증인을 이단시 하는 보수 개신교 쪽에선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감도는 요즘이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로 고초를 당한 피해자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결과,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본다. 결국 관건은 운영의 묘다. 제도를 잘 만들어 운영하면 일부의 우려는 불식될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총 들고 전쟁에 나가 상대편을 죽이는 게 애국이 아니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총을 들지 않고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

사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이런 영웅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핵소고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도 그 중 한 명이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면 우리도 얼마든지 제2, 제3의 데스몬드 도스를 배출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헌법재판소는 기념비적 판단을 내렸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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