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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시아에서 바라본 남북정상회담과 지속가능한 평화에의 기대

남부원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사무총장)

남부원
(Photo : ⓒ 국민일보)
▲남부원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사무총장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사회라는 영토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시아는 물론 아시아와 글로벌 사회 구성원 전체를 흥분과 기대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판문점선언이 담고 있는 여러 선언적 약속들이 구체적인 성과로 열매 맺기까지는 필요한 절차와 시간 그리고 넘어야 할 언덕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 선언이 담아낸 공동의 정신과 의지는 동북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지속가능한 평화'에의 전인류적 열망을 강력히 뿜어내고 있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반복해서 보도되었듯이, 지금은 남북의 두 정상, 즉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의 스테이지(무대) 위에 올라 모두가 갈망하는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일에 핵심행위자(key players)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아시아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오늘의 남북정상회담이 있게 한 것은 분명히 민초들이 중심이 된 촛불혁명이었다.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정치가 국민을 섬기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권력을 남용한 결탁과 사익추구에 여념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민초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정의와 공정함에 목마르게 하시고 그 목마름들이 하나둘 모여,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루게 하셨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이어 개혁적인 정부의 탄생, 그리고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향한 도정에 이르기까지 그 엄청난 역사적, 사회적 드라마를 연출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이 역사적인 사건들이 아시아적 관점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은 작금에 이르러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안타깝게도 역사퇴행적인 흐름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로부터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시민사회적 공간(Civic space)의 위축, 종교간 갈등과 폭력화의 확산, 새로운 형태의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흥 등이 점진적으로 목도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고,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약화되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정의와 평화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최근 필자는 어느 글에서 재미있는 분석을 읽은 적이 있다. 남아시아의 종교 간 갈등이 일종의 악순환처럼 격화되는 현상을 분석한 글인데 이를 간추려보면, 남아시아의 중심국가라 할 수 있는 인도가 다수종교인 힌두교를 중심으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그 파급효과로서 이웃나라들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등에서도 동일한 현상으로 그 나라의 다수종교(이슬람, 불교 등)가 점점 더 배타적이고 급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최근에 다녀온 나라들에서 이러한 현상을 피부로 느낀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악순환적 도미노현상"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이 현상은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한 요인으로 우려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경이 얇아지고 상호영향이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현상은 정치, 경제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보인다.

아시아의 이러한 퇴행적 흐름의 한가운데서 지난 2016년 11월부터 일어난 민초들의 정치적 각성의 이 거대한 흐름은 그 진폭이나 속도로 미루어보건대 한국사회의 경계를 뛰어넘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일이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 아시아 및 세계평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면, 판문점선언으로 상징되는 지금까지의 평화구축 노력이 앞으로 한미, 북미간 정상회담, 남북한과 미국의 3자 회담, 또한 중국 등을 포함하는 확대된 다자회담과 후속선언으로 발전해감은 물론, 퇴행적 흐름에 묶여있는 아시아 전역에 일종의 "선순환적 도미노현상"이 되어 요원의 불길같이 아시아 전체를 관통하게 되길 염원해본다. 물론 이러한 흐름의 저 밑바닥에 시민, 즉 민초들의 새로운 각성과 자발적인 행동이 변화의 촉매자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을 터이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4)

구약성서의 이 "영원한 평화"에 대한 약속은 어찌 보면 오늘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시적(詩的)인 약속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인 그의 왕권이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사야 9:7)이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사회는 물론, 이웃나라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는 다면,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평화의 도미노현상은 퇴행의 늪에 빠져가는 아시아 전체를 공의와 평화의 물결로 분명히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일구어본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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