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증평모녀 사건: 자살자 유가족 지원과 우리의 생각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자살예방
(Photo : ⓒ YTN 뉴스 화면 )
▲숨진 지 2개월 만에 발견된 증평 모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자살자 유가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숨진 지 2개월 만에 발견된 증평 모녀의 죽음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인간 비극의 극단적 현상을 또 다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자살 후 반년 가까이 두 모녀는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전업 주부였던 A씨의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난 후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유서의 한 마디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지난 6개월간 모녀가 도움을 요청하며 내민 손을 잡아 준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이웃도 국가도 하지 못했다. 아주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저 안타까워하거나 자책만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자살자 유가족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책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이에 필자는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몇 가지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인식개선이다. 미국의 유명한 자살심리학자인 슈나이더만은 자살 유가족들은 가장 큰 정신건강의 피해자들이며 그들은 평생 자살자의 유골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살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오명으로 심한 수치감과 무력감, 그리고 우울감과 절망감의 홍수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른다. 그렇기에 유가족들은 밖으로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또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도움 요청을 꺼려하거나 두려워한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들도 자살의 피해자로 생각하고, 그들 때문에 고인이 죽은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인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정상적인 애도과정을 거쳐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절망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자살 유가족에 대한 상담 및 치료이다. 자살 유가족들은 자살한 가족의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한다. 죽은 고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된다. 이 장애의 특징은 처음 받은 충격이 계속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 상처는 계속된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유가족 지원센터를 운영한다. 지난 10년 동안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후 매월 개최되는 자조모임에 참여하도록 인도된다. 그리고 전화상담을 통해서 서로 보살피는 기회를 주고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유가족들에게는 병원 치료를 의뢰한다. 자살 유가족들에게 좀 더 많은 상담과 치료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셋째, 법적, 제도적 확충이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자살 유가족은 자살 고위험군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인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역할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편이 자살로 죽은 사람들은 가사와 남편이 담당했던 경제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고, 부모가 자살로 죽은 유자녀들은 다른 기댈 언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유가족들은 자살로 인해 생긴 정신적 충격을 감당하면서 또한 외적, 환경적 적응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큰 재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가족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법적, 제도적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그들의 신상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해야만 알 수 있다면 이미 그들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자 유가족이 발생하면 그들과 접촉하는 경찰이든 동사무소 직원이든 그들이 도움을 받을 수 법률지원, 긴급지원, 상담 및 치료 지원 등에 대한 안내가 반드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유가족 지원을 위한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사회적 오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가령 자살사건 현장에 경찰이 가서 조사하게 될 때, 정신건강복지센터 혹은 생명의전화 같은 민간단체 상담사들이나 유가족 출신 상담사들이 경찰과 함께 가서, 유가족들을 만나 상담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향후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 및 지속적 상담 치료를 안내하면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유가족 지원은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나 여러 종교단체가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해서 심리적 도움과 종교적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유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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