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 "한중일 평화 시민연대 필요"(1)

2월 26일(월) 프레스센터 엠바고룸에서 "올림픽과 평화" 주제

편집자 주] 대화문화아카데미(이사장 이삼열 박사)는 2월 26일(목)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 엠바고룸에서 사계 권위자들을 초청하여 "올림픽과 평화"를 주제로 대화모임을 가졌다. 대화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진행됐으며 이삼열 박사가 주재했다. 참석자로는 고유환(동국대 교수, 정치학), 김성재(김대중아카데미 원장), 박순성(동국대 교수, 경제학), 박종화(여해와함께 이사장), 박태식(성공회대 교수, 신부), 유승삼(전 서울신문사 사장), 윤진(KBS 기자), 이기호(한신대 교수, 정치학), 이부영(동아시아평화회의 조직위원장),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이종오(명지대 교수, 사회학, 전 대통령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이현숙(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전 대한적십자 부총재), 이혜경(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차미경(아시아교육문화연구소 소장), 최상용(고려대 명예교수, 정치학, 전 주일대사) 등이다. 대화 내용의 기록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맡았으며 당 아카데미의 허락 아래 그 전문을 3부로 나누어 전재한다.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평창 올림픽은 기대 이상이었다. 올림픽 이후 평화 무드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올림픽과 평화' 모임 이후 관련 내용을 팔로업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조언을 듣고자 이 자리를 만들었다. 올림픽 이후 남북대화가 제대로 되어 평화 올림픽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한국 사회 내부의 여야 간, 진보/보수 간 대립과 세대갈등 등 남남갈등 해결의 문제가 남아있다. 앞으로 대화문화아카데미 대화모임의 초점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우선 이후 한반도 정세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이삼열 이사장
(Photo : ⓒ 이인기)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이삼열 박사

고유환(동국대 교수, 정치학): 북한이 지난해 11월 29일 화성 15호 발사 이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이 크게 정세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 트럼프 정부의 지속적인 최대 압박 정책이 영향을 주었지만, 북한이 병진노선 관점에서 핵을 완성했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관점에서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그것을 신년사로 이야기하면서 최고 지도자의 입으로 남북관계 개선, 평창올림픽을 자신들의 정권 수립과 함께 민족적 대사로 규정했다. 이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규정이다. 남측의 평창올림픽도 민족이란 전체 틀에서 보면 대사이고, 자신들의 9.9절도 국가 수립 70주년을 맞는 대사이므로, 두 대사를 함께 잘 치러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다. '우리민족끼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자는 것이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간 북한이 생각했던 북미 대결구도에서,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 구도로 변형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북은 발전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늘 여전히 나라와 민족 단위를 강조하고 있다. 기본 단위를 나라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남쪽을 같은 민족의 범주로 묶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일부 합의가 이뤄졌고, 평창에 북 대표단이 내려오고, 김여정 특사의 정상회담 제안까지 이뤄진 상황이다. 뿐 아니라 <조선신보>에서 북남대화와 관계 개선의 흐름이 이어지는 기간 동안, 북측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하지 않을 거라고 내다보는 것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기사를 썼다. <조선신보>는 북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지로, 이것이 우리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내용이다. 평양의 승인 없이 쓸 수 없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과 아울러 이번 북 대표단으로 외무성 부국장이 내려 왔다. 북이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시켰고 대표단에도 남북관계의 외무성 당국자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간 북은 남북관계의 경우 민족 내부의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틀 속에서 외교적인 공간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했고, 핵 문제는 북미 문제로 분리시켰었는데, 이번부터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으로 북의 입장 변화가 생겼다.

이 부분이 큰 분기점일 것 같다. 북한이 쌍중단 관점에서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기에 상응하는 한미 군사연습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청와대 회의에 참석했는데, 대통령이 김영철이 온다고 말씀 하시더라. 그래서 제가, 김영철이 온다면 <조선신보>에 나온 이 내용을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만일 이게 진심이라면, 최고 지도자의 뜻이 맞다면, 군사연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쪽에서 되물을 가능성 있다고. 그랬더니 그게 고민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다른 당국자를 만났을 때도 아직 이 문제는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방부나 군사 쪽에서는 연기되고 축소하는 것으로 해서 진행하는 상황인데, 다른 쪽에서는 폐막식 대표단이 내려와 있는 기간에 이것의 진정성이 확인이 된다면, 그리고 북미간 대화 시작의 계기가 마련된다면, 한미 군사연습도 포괄 범위 내에서 의제화해서 논의할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약간 열어두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이 올림픽 이후 정세 관리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먼저 정상회담 카드, 핵실험과 미사일 중단 카드를 내밀고, 즉 자신들이 쓸 수 있는 카드 먼저 내밀었다는 점에서 주도적, 적극적으로 풀어보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군사연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고비인 것 같다. 미국 측 대사관 한 관계자의 이야기는, 북한의 건군절 기념행사에 대해 무난히 넘어간 것처럼 그 부분도 축소해서 예정대로 넘어가고 일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 논리를 같이 적용시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정세를 푸는 데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이미 북의 최고지도자가 결심을 했기 때문에 '로우키'(Low-Key)로 하더라도 크게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국내 반발, 남남갈등도 있고 하니까 예정대로 그냥 로우키로 하고, 이후 북이 반발하지 않으면 미국의 기본입장인, 전략 도발 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때 미국도 대화하겠다는 부분이 있다. 이 기간을 넘기면 미국도 대화할 뜻이 있는 것 같다.

관건은 북한이 북한식 쌍중단 카드를 먼저 내민 상황에서, 한미가 어느 정도 선에서 (북의) 진정성을 따지고 군사연습 문제를 어떻게 다뤄 나갈 것인가, 북이 거기에 어떻게 반발할 것인가 여부인 것 같다.

이삼열: 일단 북미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어제 오늘 사이 북 외무성 최강일 부국장과 앨리슨 후커 미국 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이 비밀리에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정보는 없나?

고유환: 그건 모르겠다. 지금 북에서는 지난번 대표단으로 내려왔던 맹경일(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돌아가지 않고 그간 계속 머무르며 남한 당국자들과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앨리슨 후커는 미국 대표단과 함께 오늘 돌아갔다고 한다. 어제(2018년 2월 25일) 밤에 두 사람이 직접 대화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측이 양쪽을 다 접촉했기 때문에 북측에 그 결과를 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제 폐막식에서 두 사람이 안 보여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직접 대화를 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안 된다. 다만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었으니, 미국에서도 한반도 담당 보좌관이 들어왔고, 북에서도 아까 이야기한 기본 노선과는 조금 다른 입장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냐 하는 말들이 나온다.

이삼열: 미국에서는 계속 비핵화 아니면 대화 안 하겠다고 하는데, 김영철이 와서 북미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비핵화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고유환: 제가 이해하기로는, 쌍중단은 대화를 열기 위한 문에 해당하는 것이고, 비핵화 부분은 원래 안 하겠다고 했고, 그러나 북미 대화라는 부분에서는 비핵화 대화 아닌 대화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제 느낌은 '부분 인정, 부분 동결' 즉 지금까지 한 것은 인정받고 2차 공격 능력을 갖는 것은 동결하는 정도인 듯하다. 미국도 흐름이 펜스 등 강경 라인 쪽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최대압박으로 가자는 것 같고, 틸러슨 매티스 등 의원들의 경우 단계별 합의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중간에서 정리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미국도 북한의 태도에 따라서는 동결 협상이라도 시작해야하지 않느냐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순성(동국대 교수, 경제학): 세 가지 정도 말씀드리려고 한다. 첫째, 북미 대화가 시작된다는 가정 하에, 시작되면 역시 대화 과정에서 위기가 다시 발생할 것이다. 경험상 보면 1993년, 1994년 대화 과정에서 핵실험을 했었고. 현재 제재가 높은 수준이라 더 위기 발생의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에서도 이런 저런 평화운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화문화아카데미는 과연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해주셨으면 한다. 시민사회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최근 올림픽 관련해 민족문제나 국가문제에 관한 젊은이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지만, 평창을 통해 나타난 것은 역시 민족이나 국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최근 컬링이 유행인데, 왜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이기니까 좋아한다고 하더라. 이처럼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인식이 강고한데, 이것을 어떻게 기존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구분하면서 젊은이들과 대화하고 고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본다.

셋째, 최근 10년 사이 공공외교가 거의 무너졌다고 판단한다. 전통적 대미, 친미 공공외교 라인도 무너져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한미관계 뿐 아니라 한일관계, 한중관계 역시 그렇다. 이 부분도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전문 영역이 아닐까? 아카데미가 위기상황 이후 평상시에 어떻게 평화 공공외교를 안정화시키고 후속 세대를 키워나갈 것인가 고민해주셨으면 좋겠다. 평화지향적이고 정치적인 공공외교를 다시 구축하는 일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말씀해주셨는데, 사실 강원용 목사님 계셔서 평화포럼을 할 때만해도 거의 아카데미가 독점적으로 평화 문제를 다뤄왔는데, 요즘 와서는 많은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공공외교 부분도 시민단체에서 외국도 가겠다고 하고, 교회에서는 교황까지 북한을 방문한다고 하는 식으로 많이 활성화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작은 대화문화아카데미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가 고민이다. 특히 아카데미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박순성: 공공외교는 시민사회, 지식인 중심의 네트워크 강화 부분을 말씀드린 것이다. 시민사회가 조직을 해서 미국에 가서 공공외교를 하거나 하는 것은 시민단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는 일반 시민사회에서 할 수 없는, 지식인, 여론지도층 중심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다시 구축했으면 좋겠다.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우선적 관심사가 무엇인가, 공식적 네트워크가 전부인가, 아니면 그 이면에 다른 움직임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걱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밀리터리 케인지언' 쪽으로 치우치는 느낌이라는 점이다. 군사 케인주의라는 것은 미국에서 국방비를 많이 쓸수록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9일이었나 트럼프가 상하원 연방정부 예산에 사인하면서 트위터에 "미국은 역사상 최강의 군사대국을 건설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Jobs, jobs, jobs)"라고 썼다. 실제로 최근 몇 개월 사이 국가안보전략보고서, 국방전략보고서 등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오히려 조지 W 부시 때보다 더 강한 군비증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미 의회에서 4월부터 내년도 국방예산 심의가 시작되는데, 백악관이 제출한 국방예산이 780조 원 정도 된다. 너무 많다보니 미국 의회에서도 좀 깎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무래도 백악관에서 제출한 국방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있어 유리한 환경은, 북미대화가 시작되고 한반도가 평화 무드가 되는 것보다, 강력한 무력주의를 벌이고 북한이 반발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야 국방비 관철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군사훈련 관련해서는 펜타곤과 국무부 쪽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군사훈련이 조정되거나 대폭 축소, 나아가 중단되기를 희망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미국에서 강도 높은 제재안을 발표해 미중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중요한 강조점이 미중 간 무역불균형 문제인데, 작년에 무역적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상황에 있다. 대북 제재라는 것이 트럼프로서는 양날의 칼이다. 북한을 공식적 통상 압박하는 측면이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지 않는 것을 중국 책임으로 돌리면서 중국에 군사 압박을 가하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또 걱정하는 부분은, 미국이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는, 미국이 평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많이 협조했는데 그렇다면 이후에는 미국의 최대 압박/제재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한다는 식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정부도 쉽게 거부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저는 종합적으로 비관적인 입장이다. 극도의 전쟁위기라기보다는, 트럼프 행정에서 북핵 문제의 효용가치에 주목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어 이를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비핵화'라는 표현은 한반도에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표현이다. 국제적으로는 '비핵지대'라는 말을 쓴다. 왜 그런가? 과거 1991년 8월 북이 비핵지대를 제안했을 때, 미국이 거부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비핵화다'라고 해서 굳어진 것이다. 두 용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비핵화는 남북간 의무사항으로 묶이는 반면, 비핵지대는 핵보유국 명시사항이 된다. 비핵지대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한반도 핵 문제를 긍정적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중요한 부분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북이 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5가지 비핵화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이 비핵지대와 유사한 개념이다. 북한은 비핵화 대화는 안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대화할 때 적어도 비핵지대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이고, 비핵지대를 목표로 한 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이야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서는 '비핵지대'를 한국 시민사회 중심으로 공론화하는 것이, 일본과의 협력 문제, 나아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연결하는 문제에 있어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나름의 논리와 대안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도해 관련 회의의 주요 테마로 잡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최상용(고려대 명예교수, 정치학): 현장에 참가했던 북한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의 접촉을 우리 정부가 주선했는데 북한이 반대했다는데, 그 사실 관계가 어떤 것인가?

고유환: 그 부분은 지난 번 김여정 특사가 왔을 때, 맹경일이 여기 계속 있으면서 우리 당국자들과 접촉을 꽤 한 것 같다. 주선을 하긴 한 듯하다. 북미대화 없이는 남북대화 자체로 독주하기 어렵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양측 간 대화를 주선한 건 사실인데, 북측이 최종적으로 펜스 부통령의 행보로 볼 때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본 것 같다. 그리고 만나는 것 자체가 펜스 류의 정책에 동의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강하게 연결을 시키려고 하다가 북이 처음에는 응하는 듯하다 나중에 최종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상용: 그렇다면 굉장히 미숙한 것 아닌가? 우리 정부가 중재를 해서 북미가 만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어느 정도의 레벨에서 어느 정도의 약속을 했는지 모르나, 처음에는 북한이 만날 것 같이 하다가 북한이 안 만난다고 해서 안 됐다? 너무 미숙하지 않나?

고유환: 펜스가 천안함 가서 보고 탈북자들을 만나고 하면서, 계속 올 때부터의 발언 자체가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북한외무성 쪽에서도 이번에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했다. 서로가 연막을 그렇게 쳤다. 그런데 막후에서는 만나는 걸로 정리가 됐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최상용: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제한적이지 않을까?

고유환: 그래서 이번에도 대표단급 접촉은 아예 시도를 안 한 것 같다. 그래서 실무자 급들이 내려온 것 같고, 미국에서도 그렇게 온 것 같다. 거기서 실질적으로 직접 대화가 이뤄졌는지 아니면 간접 대화 형태로 서로 전달받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이삼열: 그러니까 지난 번 김여정, 펜스 둘 사이의 만남이 주선되었고 북에서도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취소됐다는 건가, 아니면 이쪽에서 노력을 했는데 생각해보겠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안 되겠다 이렇게 된 건가?

고유환: 이야기가 됐으니까 미국 측에서 그렇게 발표했을 것이다. 보통 그런 것은 발표하지 않는데, 펜스가 아마 너무 당신이 강경 발언을 하고 강경 행보를 보여 깨진 것이 아니냐 하는 여론 때문에, 만날려고 했는데 북이 거부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김성재(김대중아카데미 원장): 한국 언론에서 펜스가 악수도 안 하고 들어갔다가 나와버렸다고 대서특필하니까, 그냥 북이 이렇게 해버렸다는 식으로 말해버린 거지요.

최상용: 그렇다면 앞으로 북미 대화를 중재하는 데 있어서 우리 정부의 역량이란 것이 굉장히 제한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다.

고유환: 형식적으로도 사실 우리 주선으로 만난다는 것은 북미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계속 남북관계 개선이나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북미 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필요충분조건으로 제시했다. 조속하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식으로.

최상용: 이번 평창올림픽을 둘러싼 남북, 한미 관계를 봤을 때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북한은 잃은 게 하나도 없다. 공은 미국으로 갔다. 미국의 원론적 입장은 비핵화에 관한 의미 있는 단계의 전제가 없으면 안 하겠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만일 대화가 이뤄진다면 그 때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두렵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전쟁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저는 전쟁 가능성에 대해 50 대 50의 위기의식은 가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평창을 성공하니까 다시 익숙해졌는데, 평창 전 상황만 봐도 2~3개월 안에 무슨 일이 있을지 위기의식이 굉장히 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는 목표를 아카데미에서 분명해 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전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해야 하고, 시민단체나 민간,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하는 과정이 너무 미숙해서, 과연 이 정부가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하기에 믿을 만한가? 의문이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만날 때마다 "내 아니면 94년에 전쟁났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본인은 늘 그렇게 진지하게 주장하셨다. 그것을 우리가 냉소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좀 더 건설적으로 봐야 한다. 나는 문 정부의 전쟁 반대에 대한 진정성을 믿고, 실제로 잘 해왔다고 본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않다.

또 하나는, 제가 북한을 보고 아주 놀랐다. 김정은 정권이 무슨 철학이나 그랜드 디자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북한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뚜렷한 목표를 향해 온 것이다. 생즉사의 각오로 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느 단계까지만 가면 우리는 억지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목표! 나는 솔직히 어디 가서 잘 이야기하지 않지만, 북한 당국이 핵을 억지력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국제사회에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미국 치려고 핵을 만든 것은 아니잖나? 그렇다면 그게 억지력이다. 그런 판단이 필요하다. 억지력으로 만들었다면 절대 포기 안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갖는 것 자체가 자기 정권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는 의식이 없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북미 대화도 시작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 동안엔 전쟁 안 할 것이다. 단, 시작되어도 의미 있는 대화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본다. 일반 전문가들이 전쟁은 없을 것이다, 대화는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데, 나는 트럼프 정부의 판단에 대해 믿음이 안 간다. 만약 이후 제2, 제3의 제재가 들어간다면, 북한이 가만히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또다시 올림픽 이전에 느꼈던 것 이상의 위기가 올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가 전쟁은 막겠다는 진정성을 정책 레벨에서 잘 하도록 촉구를 하고, 그러려면 보수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게, 한미 관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아베와 트럼프 사이의 신뢰에 비하면. 한미 간 신뢰가 없는 것 같다. 전쟁을 막으려면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 하되 한미 관계 간 첨단 정보의 공유를 포함해 신뢰를 심화해야 한다.

또한 김정은이 얻은 게 많다는 게, 남한사회를 아무런 비용도 노력도 없이 이렇게 갈라놓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에 냉전의 후유증으로 이념의 양극화가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다. 최악의 수치다. 북한은 별 노력 없이 그것을 만들고 또 강화시켰다. 냉전이 이미 세계적 수준에서 붕괴되었는데, 남북한 냉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 내부의 냉전이 악화된다는 사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년 후 도쿄올림픽인데, 일본의 신뢰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 국가를 넘어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파트너 시민단체를 구하거나, 이미 있다면 연대를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보적 시민단체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보통 시민단체까지 아울러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연이어 베이징동계올림픽도 열리니 중국 쪽 시민단체도 구상을 해서 한중일 시민단체 모임, 포럼, 운동 등을 시작하면 좋겠다.

유승삼(전 서울신문사 사장): '전쟁은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를 하는데 정부와 시민단체가 노력했으면 좋겠다. 저는 비관적으로 보는데,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이 핵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또 미국이 '가져라' 쉽게 하겠는가? 해결이 지난한 문제다.

문제는 선제공격에 대해 트럼프 정부는 물론이고, 국내에도 찬성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북한이 전면적 반격을 하지 않더라도, 핵 낙진만 해도 우리에겐 큰 문제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핵과학자 등을 동원해 제한적인 폭격을 하더라도 우리에게 실제로 미치는 영향이 어떤가 하는 부분을 일반에 계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쟁은 안 된다'는 합의와 여론 조성에 시민단체와 정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제가 '극단적 갈등 상황의 해결 방법'에 관해 어느 논문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첫째가 '시간을 끌어라'였다. 시간을 확보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상대를 경청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생기고 대화가 되고 양보가 되고, 나중에 양보는 힘센 자가 먼저 양보하는 등의 코스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상황은 시간을 확보해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후 단계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무엇이 옳고 그르건 간에 전쟁의 위험성을 낮추고,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해야 한다. 미국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권이 전문가나 로비스트를 박근혜 정부건 MB 정부건 진영에 관계없이 총동원해 트럼프 정권에 영향을 주어 전쟁은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은, 보통 세미나 같은 것을 하면 찬반 양쪽의 극단적인 인사들을 부르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주제 발표를 하고 절충할 수 있는 안을 가져오도록 선주문할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통일에 관한 책을 보니, 오스트리아는 국토의 분단을 막기 위해 중립파안이라는 묘수를 냈다. 그러니 서방도 러시아도 싫어했다. 소련은 특히 강경 반대 입장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정부가 소련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 영국과만 교섭하는 게 아니라 인도 네루 수상에게, 소련의 대사, 핀란드 수상에게 부탁했고, 심지어 브라질에도 부탁했다. 브라질과 오스트리아가 무슨 관계가 있나 봤더니 브라질의 초대 왕국의 왕후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또한 당시 오스트리아 수상을 했던 두 사람이 술고래였는데, 러시아 사람들도 술고래 아닌가! 이들이 모스크바에서 모로토프 수상과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먹고, 조약 일부를 고치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말하자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진영에 관계없이 자원을 총동원하는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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