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이은선 교수, "유교와 기독교의 통합적 사고는 무군무부 시대의 빛"

[특별대담] 서광선 회장, 이정배·이은선 교수 내외 ②

이은선
(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현대를 '무군,' '무부'의 시대로 정의하며 유교와 기독교의 융합적 자세를 주문하는 이은선 세종대 교수

편집자 주] 이은선 교수는 서광선 본지 회장과의 대담에서 현재 우리사회를 무군과 무부의 상태로 진단하고 유교와 기독교의 통합적 사고를 재해석하여 우리사회를 '인간이 살며, 인간이 살만한' 공동체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2부 내용을 전재한다.

서광선: 이은선 교수께서는 유교와 페미니즘을 결합하는 시도를 하고 계시지요?

이은선: 네, 제가 쓴 글 중에 그 이유를 설명한 논문이 있습니다. 주제는 "왜 여성 페미니스트가 유교를 공부하는가?"입니다. 거기에 제가 왜 유교를 공부하게 됐고, 유교에서는 무엇을 강조하며, 왜 오늘 한국의 신학 내지는 기독교가 유교에서부터 배워야 하는가? 등에 관해 자세히 썼습니다.

서광선: 그것이 이 교수께서 최근에 발간하신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모시는사람들, 2016)에 반영되어 있지요? 이 책을 보면, 선생님은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가 아니라 '진짜 유교, 진짜 기독교'를 알려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유교라는 것은 저부터 포함해서 왜곡된 인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독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기독교가 다른 기독교이듯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기독교가 아니지요. 어쨌든, 제가 '다른 유교'의 입장에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유교라고 하면 가장 초보적인 개념이 삼강오륜 아니에요? 그렇게 배웠는데, 그게 얼마나 가부장적입니까? 인간관계나 정치관계에 있어서도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중시하잖아요? 정말로 유교가 친여성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은선: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인류의 삶속에서 각 지역에서 전개된 종교체제, 정치체제는 모두 가부장적이었습니다. 삼강오륜을 예로 드셨는데, 모세의 십계명도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남성들에게 얘기한 것이고, 여성은 그냥 소유물이었지요. 기독교나 유교나 당시의 인류의 의식 속에서 생각해낸 것들, 표현해낸 것들은 유교만이 가부장적이지 않았고, 기독교만이 가부장적이지 않았고, 불교만이 가부장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 신학자들은 그렇게 가부장적인 기독교에서도 여성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여성신학을 하고자 하고, 그것이 모두 유의미하다고들 평가하는데, 왜 유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서광선: 하지만, 예를 들어서, 기독교는 여성을 해방시키고 여성들을 위해서 학교도 만들고 여성을 주체화하면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많이 개발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인이 된다'라고 하면 전통 유교를 완전히 버리는 걸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은선: 그렇지요. 하지만, 기독교의 가장 좋은 면과 유교의 가장 안 좋은 면을 비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90년대 초에 귀국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여성을 독특한 주체로 세우는 일에 페미니즘의 열의가 집중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토착화 여성신학의 포괄적 접근법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90년대 초에 한국여성학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유교 이야기를 해서 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요즘에 거론되는 여성 리더십, 한국적 여성 리더십은 보살핌과 배려와 어떤 따뜻함의 요소와 관련되어 있잖아요? 30년 전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을 한다면서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하지?'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철저한 주체성, 철저한 분리와 분석을 굉장히 강조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의 허구성, 비지속성을 지적했었습니다. 요즘은 많은 여성학자들이 저의 견해와 비슷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맹자의 말을 거론했었습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국시대에 맹자가 보기에 세상이 두 가지의 큰 병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무군(無君)과 무부(無父)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했습니다. '군'을 인정하지 않고 '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상이 큰 병폐라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말로 설명하면, 무군은 공공성의 부정을 의미합니다. 공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정말 진정한 의미의 군주가 없다'는 말은 공동체에 질서를 부여하고 지속성을 담보할 예(禮)와 조화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예와 조화를 체화해서 제시해주는 공적인 영역이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며, 그것이 정치고, 대통령이고, 선생님이고, 언론입니다. 그런데 이런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사실을 자기 나름의 의견으로 희화화하고, 또, 사견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입니다. 이것이 무군의 상태이며 공적 영역의 와해를 가리킵니다.

서광선: 무부는 가정의 해체를 일컫습니까?

이은선: 네, 맞습니다. 가족이 해체된 것입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진짜 친밀한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가 다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전국시대에는 이어지는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옮겨 다녀야 했으니까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예를 들면, 권력가들은 자기의 이익에 따라서 합종연횡을 수시로 했으니까 백성들은 그냥 여기 피하러 다니고 저기 피하러 다니는 통에 안정된 가정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도 못하고 3포시대를 사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서광선: 3포세대는 아버지가 없어서 생긴 겁니까, 아니면, 3포세대가 아버지를 없앤 것입니까?

이은선: 인간이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물론 전통적인 의미의 아버지, 어머니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습적인 틀 구조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인간이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특히 어린 시절에 집중적인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절대 시간, 즉,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다 무너졌습니다. 요즘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몇 개월 만에 다 공동육아원에 보내지고, 여성들은 자기가 원해서뿐만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도 직장에 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맞벌이 부부가 아니면 도시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지 않아요? 이런 부담이 결혼을 포기하는 사태를 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각자는 각자도생으로 자기 밖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부의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광선: 무군, 무부가 자기중심주의로 연결되는 군요. 그런데 페미니즘은 어쨌든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 주체성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군'과 '부'의 개념과는 모순되어 보입니다.

이은선: 물론, 서구의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여성들이 가족에게 함몰돼 있었고, 아까도 말했듯이 그런 주체로서의 자기를 인식하는 데는 많이 뒤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서구는 최고의 존재와 누구든지 다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데다 최고의 존재를 읽을 수 있는 성경도 일찌감치 주어졌기 때문에 주체가 크게 깨어났다는 건 사실이고 분명히 여성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출발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함께 사는 삶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다음세대가 이어져야 하고, 그 다음세대는 누구든지 한 인간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태어나서 얼마동안은 누군가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무군, 무부의 삶의 형태는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공적 영역이 다 무너져 버리고, 철저하게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무부의 상황 속에서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태어남을 당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오늘에 있게 한 전 시대의 희생과 전 시대의 시간이 있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광선: '유부'의 조건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이은선
(Photo : ⓒ사진= 지유석 기자)
▲이은선 교수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의 개념에 대해 대담하고 있는 서광선 박사. 왼쪽은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이은선: 그렇습니다. 이것이 너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기독교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강조하는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기독교도 너무나 피폐해져가는 상황에서 다시 예전의 진짜 유교가 가지고 있었던 핵심적인 사상을 접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사적 영역에서만 살 수도 없으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함께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나와 공동체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주체라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고, 공적 영역이나 가정이나 국가도 부정하지 않는 긴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유교적인 가르침을 기독교가 받아들이면 훨씬 더 새로운 제3의 주체성, 예를 들면, 전남대학교 김상봉 교수의 말씀대로 "서로 주체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요즘에 얘기하는 여성적 리더십이 돌봄의 리더십, 배려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은 "서로 주체성"의 조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본다는 것이 공동체의 인간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타자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공적 영역과 타자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가르침이 유교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광선: 진짜 유교요?

이은선: 네, 진짜 유교요. 그런데 기독교가 이렇게 부패한 것처럼 유교도 부패하면서 위와 같은 개념들이 묻혀버렸지요. 더 철저한 가부장주의와 더 철저하게 개인을 공동체 속에 종속시켜버리는 질서체계는 유교 정신의 부패를 반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적영역, 진정한 의미의 부모는 우리의 삶을 살리고 이끌어주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광선: 맹자가 얘기한 무부의 상태를 오늘에 와서 우리는 유부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놀라운 생각입니다. 확장하자면, 무모(無母)의 상태가 결국은 사회적 혼란과 공동체의 파괴를 초래했기 때문에 우리는 유모(有母)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이은선: 네, 그렇습니다. 유교와 기독교의 창조적인 융합! 제가 두 문명의 대화를 통해 꿈꾸는 영성이죠. 생명을 위해서 다른 것을 모으는 통합성. 거기서 타자를 받아들이는 타자성. 그리고 그 생명을 살리는 뜻을 위해서 지속하는 지속성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안동의 퇴계도산서원에서 열린 국제퇴계학회에 다녀왔습니다. 퇴계학회에 오시는 유학자들도 유교를 갱신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제가 이 통합성, 타자성, 지속성의 개념을 가지고 기독교와 유교를 통합하려는 생각을 밝혔더니 도산서원의 선비문화진흥 사단법인 김병일 이사장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정말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유교를 재해석 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와 유교의 정수를 결합하여 재해석하면 제2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개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 됐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고 꿈입니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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