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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갑질과 촛불의 비명

입력 Aug 15, 2017 10:41 PM KST
kab
(Photo : ⓒ김신의 작가)
▲인간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부르짖음이 촛불의 함성이었다고 본다면, 갑질이 폭로되는 현실은 촛불을 든 을의 혁명의 연장선이다.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갑질의 행태를 접하게 되면 우리나라에는 갑질이 일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돈과 권력을 지닌 갑은 그 상대방인 을에게 자신이 가진 권력과 돈이 그 사람의 인격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 듯하다. 물론, 그 갑도 자신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갑으로부터 을로서 취급을 당한다. 우리사회에서 갑질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그 갑질의 최상위에는 사람이 앉은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라는 추상화된 실체가 앉아 있다. 돈과 권력만을 좇으니 우리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부르짖음이 촛불의 혁명이었다. 갑질을 당하고만 있던 을들이 촛불을 켜들고 "나도 인간이다"고 외친 것이다. 광화문의 시민혁명은 을들의 혁명이었다. 그 혁명을 일으킨 촛불이 그 동안 그늘에서 자행되던 인권침해를 폭로했다. 이것은 을의 혁명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갑의 사과는 을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촛불의 함성에 굴복한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을의 비명에는 하늘이 반향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명을 듣고 "내가 내려가서"(출애굽기3:8) 그들을 구출해낸 역사로 증명되어 있다. 갑은 을도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갑과 을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공정한 관계를 이룰 때 만들어지는 사회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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