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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자화상: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 자신을 마주할 때
김문선 목사(좋은나무교회)

입력 Jul 25, 2017 11:52 AM KST
윤두서
(Photo : ⓒ 문화재청)
▲윤두서 자화상

맘몬에 함몰된 교회 문화가 싫어 교단을 나왔다. 맘몬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식으로 자비량 사역과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교회를 목회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이 녹록치 않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신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 가족들이 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 말하지만 돈 없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가치와 의미 중심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념을 지키는 길이다.

지난 여정, 이런저런 일들을 해왔다. 교육 회사와 운동단체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집필가와 강연자로, 공장과 식당 일용노동자로도 일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황폐해져가는 내면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왜 한 곳에 적응하지 못할까?',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잘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잘 가고 있는 걸까?'

청춘의 호기스러운 자신감이 세월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빈 자리에 의문과 불안, 조바심이 꽈리를 틀고 앉아버렸다. 꺾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처럼 슬프고 우울한 일도 없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自信)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산란한 정신세계에 쉼표를 찍고자 TV를 틀었다. 프로그램 속에 잠시 등장하는 한 점의 그림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선 후기 화가인 윤두서의 자화상이었다. 또렷한 응시, 굴곡진 주름, 한올 한올 활짝 핀 수염, 두툼하며 둥근 얼굴선과 콧날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신과 사투를 벌이듯, 뚫어져라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가장 좋은 측면의 얼굴 각도로 사진을 찍는 현대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윤두서는 측면이 아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점이 달랐다. 스스로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성찰에 도전하겠다는 반증 아닌가. 얼굴 속에 깃든 삶과 얼의 결을 가감 없이 마주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윤두서의 자화상은 어색하지 않다.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기대와 걱정, 긍정과 부정. 무수한 얼의 결들이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있다. 스스로의 어둠까지 품은 화가의 얼굴엔 자신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오롯이 서 있는 주체가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의 구속을 하찮게 여기는 듯하다. 그렇게 화가는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가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림을 거울삼아 자신을 보았다. 거창한 삶의 이름들 앞에 소외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내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 잃어버림이 자기 생명에 대한 더 큰 집착으로 변질되었다. 동시에 좋은 측면의 모습만 보고 싶어 하는 인식의 편협함도 커져만 갔다. 그렇게 스스로를 거절하며 미워하고 있었다.

윤두서의 자화상이 소리 없이 가르쳐준다.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 자신과 마주할 때라고. 그 길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삶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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