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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들리지 마십시오

2017년 5월 21일 주일예배 설교자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설교문

* 선을 행하라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한 달 가까운 미국 체류 기간 내내 저는 여러분을 그리워하며 지냈습니다. 토요일 저녁 집회를 인도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저녁 10시 무렵이 바로 우리 교회 주일 예배가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비록 유튜브를 통한 것이긴 해도 4주 내내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몇 주 동안 함께 자리를 비웠던 분들도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다 오셨나요? 반갑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미국에서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은 나름대로 잘 소화하여 제 목회와 실천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존 웨슬리 회심 27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회심을 기념하는 까닭은 그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가 역사의 변화로 이어졌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파리한 신학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삶이 무너져버린 이들 곁에 다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고, 성화된 삶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역사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가 감리교인들에게 권고하는 삶은 이런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한 일을 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증거는 '선한 일을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구원의 보증이라는 말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은 선을 행하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빌1:6).

*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들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같은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며, 그것을 좇아라"(벧전3:11). 하나님의 마음에 잇대어 살려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먼저 악을 떠나야 합니다. 악은 타자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려는 마음입니다. 악을 떠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은 타자들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 슬픔과 고통을 온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이제 주님과 같이 살아내야 합니다. 타자의 유익을 구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깃드는 것이 평화입니다. 삶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참다운 삶의 원리는 이처럼 간결합니다.

베드로는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하게 살려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한 사람을 미워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기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지 않습니다. 양보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양보하지만, 근본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고난이 따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일찍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전하다가 매를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켰습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행6:41). 못 말리는 믿음입니다. 베드로도 믿음의 사람들이 겪을 고난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벧전3:14)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을 견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애틀란타에 머무는 동안 조지아의 소읍인 플레인즈(Plains)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미국의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고향인 동시에,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곳에 간 주목적은 '코이노니아 농장'을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클라렌스 조르단(Clarence Jordan) 목사가 1942년에 일군 농업 공동체입니다. 그는 인종주의와 탐욕, 그리고 착취가 만연한 조지아의 숨터 카운티(Sumter county)에서 형제애와 비폭력, 경제적 나눔을 그 근본 원리로 삼는 기독교 생활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는 그 공동체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조지아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동료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한 상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주위에 사는 농부들은 남부의 전통을 깨는 일이라며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하게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은 여러 차례 농장에 폭탄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공포를 주입함으로 그런 공동체의 실험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클라렌스는 포기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무서워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신약성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며, 겉모습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분임을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다"(Dallas Lee, , Wipe & Stock, 1971, p.38-39). 진짜 보수주의란 이런 것입니다. 지켜야 할 것을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는 것 말입니다. 설립자가 세상을 떠난 후 '코이노니아 농장'은 다소 침체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 피칸, 복숭아, 배, 자두, 호두, 무화과, 살구, 밤, 감나무 등의 나무들과, 외지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재는 그들의 실험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선한 양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3:15a).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싱겁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 말고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것, 또 두렵고 떨림으로 그 마음과 일치를 이루려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 찢기신 그분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과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하게 주께서 위임해 주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크게 떠벌릴 것도 없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우리 경험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3:15b).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유난히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일이 있으면, 그게 바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자리라고 믿어 왔습니다. 아픔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삶에 대한 비전도 나누면서, 우리는 가슴 시린 이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외투가 되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제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단어는 '환대'입니다. 이번에 제가 다녀온 수도원 혹은 공동체에서 제가 느낀 것은 환대의 따뜻함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께서 보내주신 존재로 여기는 이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모두 환대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환대의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표정으로든 말로든 사람들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적대감이 증대되는 세상에서 환대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른 위안이요 힘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선한 양심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양심이면 양심이지 선한 양심은 어떤 것입니까? 양심의 사전적 정의는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올바른 선을 명령하고 사악을 물리치는 통일적인 의식"(민중 에센스 국어사전)입니다. 영어 사전은 양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 "양심은 마음의 일부로서 당신이 행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해준다". 2. "양심은 대중적이지도 않고 어렵고 또 위험하다 해도 옳다고 믿기에 뭔가를 행하는 것이다". 3. "양심은 어떤 그릇된 일을 행했을 때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느끼는 죄의식이다"(Collins Cobuild Learner's Dictionary, v.1996). 어렵다고, 위험하다고 피하는 순간 우리 양심은 무뎌집니다.

*어디에 서려는가?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선한 양심은 어디에 터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분에게는 낯선 존재 혹은 당신과 무관한 존재가 없었습니다. 저는 양심과 공감의 능력은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어떤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품는 것일까요? 공감 능력일 겁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선한 양심'은 타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아픔을 해결해주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걸을 때 우리는 맑은 사람이 됩니다. 그 길이 꼭 꽃길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만연한 아픔을 덜어주려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의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라를 성인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 부른다". 세상에는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는 착한 이들이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매우 성마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오늘 예수가 이 땅에 오신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의 비난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현실을 감내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3:17)

이 각오면 됩니다. 이 마음을 얻지 못해 우리 삶이 비굴해집니다. 선을 행하다가 겪는 고난은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더 굳건하게 비끌어매줍니다. 그 고난을 통해 영적 자유가 우리 속에 유입됩니다. 우리가 정녕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편안함만 구해서는 안 됩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1965년 3월 8일에 있었던 알라바마 주 셀마 대행진에 앞서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재는 궁극적인 척도는 평안하고 형편이 좋은 때 그가 어디에 서 있었느냐가 아니라, 도전과 논쟁의 시기에 어디에 서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찬송가 586장 가사가 우리 가슴을 뛰게 합니다.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입니다. 회심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두렵고 주저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말입니다. 인간의 의무는 자기를 초월하는 데 있습니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걸어 마침내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이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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