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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실제로 알고 계신다

스티븐 알트로그(Stephen Altrogge)

낙심 불안
(Photo : ⓒpixabay)
▲지금 낙심해 있는가? 우리의 고통을 속속들이 아시고 실제로 공감하시는 하나님께 다가가라.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그 사람 신발(그의 입장)을 신고 1마일은 걸어라. 그렇게 누군가를 비판하게 되면 당신은 그로부터 1마일 멀리 있게 되고 그의 신발을 갖게 된다." - 잭 핸디(Jack Handey)

내 친구 아담은 현명한 사람이다. "랍비와 사제와 채식주의자가 술집에 들어갔는데 ..." 식의 농담을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잠언과 실제 생활에 적용할 만한 지혜를 구사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우리 지역 대학의 사감인데, 그래서 매일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는 문젯거리에 봉착한 학생들, 우울증에 빠진 학생들, 학사근신 중인 학생들, 마약에 절은 학생들, 폭행당한 학생들, 낙제할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대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매우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제로 내쳐진 아이들을.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아담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단다." 어쨌든 이 말이 누군가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우리가 해주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과 연결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려고 한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갖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자 하는 충동은 좋은 충동이다. 하지만 아담은 언제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왜? 그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가 누군가의 고통을 실제로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상황에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누군가가 실제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정말로 알지 못한다. 이것이 지혜인 것이다.

사실, 누군가가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비록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과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가 하듯이 세상을 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사, 생물학적 체질, 지원체계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다. 누군가가 식육분쇄기 아래를 통과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저 그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의 미미한 일부분만 알고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인지하는 데 한계가 있는 우리는 고린도후서 7장6절의 말씀이 귀하게 들린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속속들이 아신다. 그분은 우리의 장점과 단점, 우리의 가족사, 우리의 생물학적 체질, 우리의 세계관 등등을 다 아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구석구석을 다 아신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 그리고 그분은 고통을 철저하게 인간적인 수준에서 알고 계시기도 하다. 고통에 대한 그분의 지식은 추상적이거나 상아탑 속의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니다. 예수님은 슬픔의 인간이셨다. 그분은 조롱받고 배신당했으며 수치를 당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분은 몹시 고통스러운 데다 압도적이며 숨을 쉴 수 없는 슬픔을 아신다.

예수님의 전지성과 깊은 고통에 대한 그분의 개인적 경험이 결합되어 그분은 고통에 빠진 우리를 완벽하게 위로하실 수 있다. 그분은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고 계셔서 우리가 낙담할 때 우리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그분은 우리가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힘겨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젖먹던 힘을 짜내어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낙담한 처지의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신다.

고통은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께로 매진해갈 때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한다. 당신은 낙담해 있는가? 당신은 고통을 겪고 있는가? 당신은 씹히다가 뱉어졌다고 느끼고 있는가? 당신은 너무 많은 빵 위에 발라진 버터 같다고 느끼고 있는가? 낙담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라. 당신을 정확하게 아시고 당신이 필요한 것도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라. 약하고 지치며 이제 그만 두고 싶은 상태에 있을 때 그분께로 다가가라.

하나님은 가슴속에 낙담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갖고 계신다. 그 공간으로 다가가라.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stephen-altrogge/the-god-who-actually-does-know-what-you-re-going-through.html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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