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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꾸짖을 용기(미3:8-12)

2016년 9월 25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 야곱 집의 지도자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곧 정의를 미워하고, 올바른 것을 모두 그릇되게 하는 자들아,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로 너희 때문에 시온이 밭갈듯 뒤엎어질 것이며, 예루살렘이 폐허더미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고 말 것이다.](미3:8-12)

#작은 치어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척박한 광야 같은 현실 가운데서 희망의 빛을 찾아 헤매는 이 땅의 젊은이들과도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새삼스럽게 민태원 선생님의 <청춘예찬>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참 멋진 구절입니다만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 구절은 참 공허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오늘의 청춘들은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화를 끓이며 지내거나 이미 식어버린 가슴의 허전함을 어루만지며 지냅니다. 청년들의 꿈을 왜소하게 만드는 시대처럼 슬픈 시대가 또 있을까요? 먹고 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의 마음이 온통 그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세태가 통탄스럽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자기 꿈을 이룰 수 있고, 나머지는 루저로 전락하도록 만드는 세상은 영혼 없는 이들을 양산해내게 마련입니다.

고도의 소비주의 사회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다른 삶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욕망의 문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우리 앞에 열린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지 못합니다. 말이나 가금류의 눈 옆에 가림막을 달아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시선을 차단하여 앞만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 눈 옆에도 가림막이 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욕망의 사다리 윗단에 올라서기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합니다. 욕망과 성취 사이의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고 가르칩니다. 기다림과 절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그렇게 길들여지다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숨이 가쁘지만, 그 길로 내처 달립니다. 가슴 가득 공허감이 밀려들 때도 있습니다.

이제 다른 삶을 상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것을 다 작파하고 새로운 길을 걷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돌아보면서 나답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사는 삶의 방식을 발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테의 '신곡' 첫 대목은 인생길 절반을 걷고 돌아보니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은 아닌지요?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의 길은 그런 것입니다. 소설가 김재영의 단편 '치어들의 꿈'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연어는 말이다, 강가에 남지 않고 멀리 드넓은 바다로 떠난 연어들은, 가장 몸집이 작은 치어들이었단다. 이상하지? 거친 파도를 이기려면 영양상태가 좋아 몸집이 크고 튼튼한 놈들이어야 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등에 기름이 낀 치어들은 민물에 남아 안주하는 법이란다. 더 절박하고 더 많이 갈구하는 치어들만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지."(김재영 소설집, <코끼리> 중에서 '치어들의 꿈', 실천문학사, 2010년 5월 10일, p.142-3)

#불의한 현실

등에 기름이 낀 치어들은 떠날 줄 모르고 안주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늘 절박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나는 법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로 산다는 것,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종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만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 혹은 어떤 이야기들의 일부로 존재하는가?'라는 보다 앞선 질문이 해명될 때에만 비로소 대답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짓는 존재인 동시에 더 큰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전 8세기의 농민 예언자인 미가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으스대며 사는 권력자들의 위선과 비리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대개 회개를 요구하지만 미가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는지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릴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미2:1-2)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 사는 방식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요즘 우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K스포츠'니 '미르 재단'이니 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채 20일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수 백억을 모금했다고 하지요? 그저 '그들이 사는 법'이라고 혀를 차고 말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참 많습니다. 권력에 중독된 이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이러니저러니 변명이 많지만 그 모금에 권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믿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들은 그런 뉴스를 들으면 허탈한 심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미가를 통해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지도자들이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하는 현실,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백성을 삶아내는 현실을 보며 그들이 심판받을 날이 다가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언자라는 이들은 불의한 현실을 보고도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미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능력을 채워 주시고, 정의감과 함께, 야곱에게 그의 죄를 꾸짖고 이스라엘에게 그의 범죄를 꾸짖을 용기를 주셨다."(3:8)

#그 이름, 예언자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기에 입각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화되어 힘 있는 이들의 죄를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꾸짖을 용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불의를 보고도 꾸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조수아 헤셸은 예언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참 간명하게 들려줍니다.

"예언자는 철저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에 무거운 짐을 지워주셨고 그는 고개를 숙여 인간의 무모한 탐욕에 망연자실해 있다."

"하나님은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분노하신다."

"예언자들의 주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엉거주춤하여 알쏭달쏭한 법이 없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가슴에서 쏟아져나와 인간의 가슴속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듯 강요하고 앞으로 밀어붙인다."(아브라함 조수아 헤셸, <예언자들>, 이현주 옮김, 삼인, 2004년 4월 28일, p.37-38 *번역서 원문에는 '하느님'으로 표기됨)

예언자는 한 마디로 '인간의 마음을 습격하는 자'(같은 책 p.44)입니다. 미가는 주님이 주신 '꾸짖을 용기'를 가지고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과 맞섭니다. 그는 야곱 집의 지도자들,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을 가리켜 "정의를 미워하고, 올바른 것을 모두 그릇되게 하는 자들"(3:9)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미가는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요, 영원한 성소를 백성들의 피가 흐른 땅, 죄로 터 닦인 곳이라 말합니다. 불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대면하기 싫어하는 진실을 유보없이 폭로합니다. 그는 시온은 이제 밭갈듯 뒤엎어질 것이고 성전이 서 있는 산은 수풀만이 무성한 언덕이 될 것(3:12)이라고 말합니다. 시온에 임할 심판은 바로 지도자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 도성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서야 다스리며, 제사장들은 삯을 받고서야 율법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서야 계시를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큰소리를 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말한다."(3:11)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가슴 벅찬 말입니다만 이 말은 정말 오용되기 쉬운 말입니다. 제 배를 불리기 위해 온갖 불의한 일을 다 자행하는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참 편리한 신앙이기는 합니다만 이 말을 가장 미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기 욕망 추구,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뇌물을 받고 다스리고, 삯을 받고야 율법을 가르치고, 돈을 받고야 계시를 밝히는 지도자들, 그들의 섬기는 것은 '돈'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주전 8세기의 현실입니다만 마치 오늘의 현실을 보고 그린 듯 생생하지 않습니까? 정치계, 종교계,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재계 할 것 없이 구석구석 악취가 안 나는 곳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깨끗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더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늘 힘에 부칩니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 투항한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염치도 부끄러움도 다 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자신들의 파렴치한 민낯이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움을 지우고 사는 묘법을 터득한 것처럼 사람들이 뻔뻔해졌습니다. 박완서 선생의 말처럼 이제는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등장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잡을 손 하나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청해야 할 것은 불의를 꾸짖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습격하는 자로 살아갈 용기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을 한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도처에 같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공포정치에서 살아남은 예언자라곤 나 혼자 뿐이라고 탄식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선지자 칠천 명을 남겨두셨다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이 진실임을 굳게 믿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세상의 요란스러운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지만, 그들이 만들어가는 화음이 소음을 뚫고 영롱하게 들려올 날이 올 겁니다. 지리산 뱀사골에서 세상과 작별한 시인 고정희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고통과 시련의 세월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자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외롭기로 작정하면 됩니다. 가기로 목숨 걸면 됩니다. 믿음의 길은 그러합니다. 좁은 길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아스라한 희망을 암시합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그렇습니다. 마주잡을 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그 손들은 세상 도처에서 우리에게 내밀어져 있습니다. 그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확장되는 법입니다. 불의는 꾸짖고, 선한 뜻은 부추기려 애쓸 때, 우리 속에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 하나가 우뚝 설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절망의 땅에서 벗어나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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