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형규 목사 추모예배 설교] 질그릇, 흙 수저, 말뚝이 목사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

parkhyungkyu
(Photo : 기장총회 제공)
고 박형규 목사

[편집자 주] 8월21일(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는 NCCK 주최로 박형규 목사의 추모예배가 거행됐다. 예배에서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서광선 목사가 "질그릇, 흙 수저, 말뚝이 목사"라는 제하의 설교를 했다. 박형규 목사의 일생과 신앙의 여정을 통찰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만드는 설교였다. 설교자에게 요청하여 설교의 전문을 싣는다.

본문: 고린도후서 4:7-18


질그릇, 흙 수저, 말뚝이 목사

"질 그릇"

박형규 목사님의 자서전,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의 마지막 말씀은 목사님의 온 생애를 한 마디로 분명하게 그리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게 정리하셨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로가 말한 '질그릇에 담긴 보배'라는 구절에서 특히 '질그릇'이란 말을 좋아 한다."

오늘 봉독한 고린도후서 4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로의 편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왜 '질그릇'이란 말을 좋아하느냐? 박 목사님이 남긴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질그릇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질그릇처럼 못났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멋진 (백자나 청자) 도자기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바보처럼 모자라는 점이 많고 게으르고 태만하여 범인(凡人)중에서도 범인이다.

(여기 '범인'이라는 말은 '범죄자'라는 뜻의 '범인'(犯人)이 아니라 -하긴 평생 여섯 번이나 서대문 형무소를 드나드셨으니, 범인 중의 범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자서전에는 한자로 보통사람이란 뜻의 범인(凡人)이라고 쓰셨습니다.)

"이런 질그릇 같은 나를 하나님은 그래도 그릇으로 써주셨다. 그때그때 가장 필요한 것을 담아 써주시고, 때로는 이 그릇에 보화를 가득히 담아주시기도 했다. 그 은총에 감사할 따름이다." (박형규, 자서전, 406)

질 그릇 속의 보배

겉으로 보기에는 바보처럼, 모자라 보이고 변변치 않게 보이는 토기(土器),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 잘 깨어지기도 하는 질 그릇, 그게 박 목사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박목사님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자신이 말하신 대로 모자라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더구나 게으른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태만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박목사님의 질그릇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둔하고 보잘 것 없이 보였지만, 그 속은 꽉 차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의 질그릇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성경책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돈을 벌거나 권력을 얻으려고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박목사님의 질그릇 속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진리가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질그릇 속의 보배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입니다. 박 목사님의 그 허스름한 질그릇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었습니다. 그 질그릇의 외모야 어떻든, 그 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목사님은 예수님의 삶을 사실 수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1960년 봄, 청와대 근처에서 부패한 이승만 정권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경찰의 총에 쓰러져 피 흘리는 비극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외쳤습니다. 박 목사님은 경제개발 독재정권의 경제발전 드라이브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청계천 빈민촌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희망이 되었습니다.

박목사님 질그릇은 사랑이 가득 찬 사랑의 질그릇이었습니다. 불의한 정권의 총탄에 피 흘리는 어린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했고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설교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청계천 빈민촌에서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굶주린 5천명에게 떡을 떼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떼어 드시며, 이것은 내 살이고, 내 피라고 하시며, 사랑을 나누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박목사님은 그의 친구들과 동지들과 교인들과 학생들과 나누셨습니다. 박목사님의 질그릇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의 질그릇 속에는 예수님의 정의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정의의 사나이였던 것처럼, 박목사님 역시 정의, 하나님의 정의의 사나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은 정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의를 말한다는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의를 말한다는 것은, 박목사님에게는 옳지 못한 정치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가리면서 정의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신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유신 헌법은 정의가 아니다. 옳은 말을 하면, 정권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좌파로 몰고 빨갱이로 몰고 도둑보다 더 한 죄를 씌워서 고문하고 죽이고 가두는 세상에서, 끝까지 아닌 것은 아니다. 군사 독재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면, 결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빨갱이들만 바른 말을 한다는 말인가? 박목사님은 감옥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와서도 그렇게 항변하시곤 했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의 질그릇은 결국 깨어졌습니다. 박목사님의 바른 말 하는 입을 막으려는 고문 경찰관들의 악랄한 폭력이 박 목사님의 질그릇을 깨고 또 깼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피흘리고 살이 찢어지듯이 박목사님의 질그릇 역시 산산 조각이 났었습니다. 박목사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쓴 면류관은 가시 면류관이었습니다. 그의 권력은 힘없는 사람들의 힘이었습니다.

"흙 수저"

흙 수저와 질그릇은 사촌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목사님이 자서전을 쓰실 때 만 해도 "흙 수저"라는 말이 아직 나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지금 자서전을 쓰셨으면, 아마 "나는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하셨을 겁니다. 박목사님 할아버지 때만 해도 집안이 상인 계급에도 들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시고 데릴사위가 되어 팔자를 고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목사님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신학문을 받아들여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신식학교를 다녔고, 마산으로 이사 간 후로는 "장가 간 머슴 하나, 장가 안 간 머슴이 너덧 쯤 있었다"고 합니다(자서전 26).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집에 와서 일하고 먹을 것을 얻어 가고 하는 그런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소달구지로 유통업을 하시면서 담배니, 어물, 곡물들을 마산에서 실어다 파는 장사로 돈을 벌고, 어머니는 농사일에 전념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박목사님의 어린 형이 병으로 죽은 것을 서러워하며 액땜을 할 셈으로 점쟁이가 하라는 대로 아침저녁으로 정화수 떠 놓고 치성을 드리다가 어떤 여자가 집 앞을 지나가면서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하고 비웃는 말에 화가 나서 그런 막말을 한 여자 분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따라가다가 그 여자 분이 다니는 교회에 들어가게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독실한, 그리고 아주 강한 믿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자서전 24).

박형규 목사님은 태어 나셨을 때, 어머니가 하나님에게 이미 바친 자식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너는 커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이름도 형규라는 이름 대신에 '성도'(聖道), 거룩한 길-성도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에 들어 갈 때까지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자서전 25) -아마 그래서 목사님의 자서전 책 제목을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쫓겨나, 길 위에서 6년 동안이나 설교를 하셔야 했습니다.- 박 목사님은 기독교의 금 수저를 물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금 수저로 태어 난 행세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으니 금수저가 틀림없지만, 그의 삶은 흙 수저의 삶이었습니다. 박목사님도 흙 수저들 편에서, 흙 수저들 하고 인생을 같이 했고, 흙 수저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질그릇을 자처하신 박목사님은 하나님의 흙 수저였습니다.

말뚝이 목사

1970년대 중간, 박형규 목사님과 민청학련 기독학생들이 남산과 보안사 고문실과 서대문 형무소를 앞 집 드나들 듯이 들락날락 하고, 대학가에선 유신 군사독재 물러가라고 소리 지르는 학생 데모와 눈물 나는 최루탄 때문에 눈을 뜨고 다니기 어려운 때에, 대학 캠퍼스 마당에서는 봉산 탈춤이 한창이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도 어디서 탈춤을 배워 왔는지, 유신 반대 데모에 나가기 전에는 거의 반드시 봉산 탈춤을 연출했습니다. 저는 현영학 교수님 뒤에 숨어서 탈춤 구경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서남동 목사님, 안병무 박사님, 김용복 박사와 어울려 한국의 신학, 민중신학을 말하고 쓰고 온 세계에 자랑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고급공무원이 우리나라 민중을 개돼지라고 했지만, 우리는 민중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민중의 편이라고 하나님 편을 들었고, 민중이야 말로 역사변혁의 주체라고 선언했습니다.

학생들이 추는 탈춤에서 민중 말뚝이는 춤을 들석들석 추면서 금 수저 양반들을 바보 무식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말뚝이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탐욕으로 더러워진 사이비 종교인을 놀려 대고 조롱하고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예수님이 옛날 바리새 사람들, 종교 지도자들을 야단치면서,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타락한 위선자들, 유대 지도자들에게 소리 지르시던 예수님의 역할을 오늘 봉산 탈춤의 말뚝이가 하고 있었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은 탈춤에서가 아니라, 춤 판, 놀이판에서가 아니라, 정치판에서, 목사답게, 예언자답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를 따르지 않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비상계엄과 비상조치 1호에서 9호까지 으름장을 놓아서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고 민중의 입을 막아 버린 유신 정권을 향해서 "선열의 피로 지킨 조국, 독재국가 웬말이냐," "사울왕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주여, 어리석은 왕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1973년 4월 22일, 남산 부활절 새벽 예배에서부터 부르짖으셨습니다(자서전 219).

박형규 목사님은 우리 1970년대 유신시대의 한국의 말뚝이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춤을 추었고 그 자유로운 몸짓으로 감옥을 드나들면서 재판장에서, 설교하는 강단에서, 그리고 감옥 안에서 민주주의를 노래하고 해방의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한국이 나은 짜라투스트라, 니체의 초인(超人), 그리고 자유인이었습니다. 현영학 교수님은 박형규 목사님을 가리켜 한국이 낳은 "광대 목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영학 교수님은 탈춤의 말뚝이와 박형규 목사님이 한국민중의 자기초월적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민중이 부패한 금수저들과 지배자들과 착취하고 억압하고 으스대는 "갑 질"들을 향해서 비웃고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그 더러운 민낯을 온 천하에 폭로하는 비판적 초월성, 그리고 자기 자신의 허약함까지도 비판하고 회개하는 자기초월의 힘이 바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혁명의 힘, 하나님의 혁명의 힘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은 한국 현대사의 말뚝이였고 어렵고 힘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대였습니다. 목사님 살아생전에 목사님 앞에서 대놓고 목사님은 광대라고, 말뚝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목사님은 좋아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서전에 쓰시기를, "내 춤과 노래 솜씨에 (서광선 박사랑 현영학 교수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 중의 하나가 '광대'였다. 나는 이 별명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는데, 내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광대라면 그 각본을 써주고 뒤에서 움직이시는 분, '감독'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자서전 122). 박목사님은 "하나님의 광대, 하나님의 말뚝이 목사"였습니다.

역사와 인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광대, 우리 말뚝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각본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시면서 하나님 나라 잔치를 향해 떠나 가셨습니다. 우리 목사님을 하늘나라로 환영하는 하늘나라의 잔치에서도 하늘의 천사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즐거운 노래와 흥겨운 춤으로 목사님을 환영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목사님을 5일장으로 섭섭하게 보내 드리고 있지만, 목사님은 지금 천사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승리의 면류관, 인생과 선교의 올림픽 금메달과 월계관을 받으러, 하나님 보좌 앞으로 다가가고 계십니다. 우리 이 "헬 조선"을 뒤로 하고...

목사님 떠나가신 이 "헬 조선"에서, 오늘 우리는 목사님과 함께, 춤과 노래로 찬송으로 기쁨으로 목사님을 환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나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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