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성화 없는 칭의는 죄인의 칭의 아닌 죄의 칭의(I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III. 칭의는 구원 전 단계(칭의-성화-영화)의 과거 단계

kimyounghan
(Photo : ⓒ베리타스 DB)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김 교수가 칭의를 '이미 이루어짐-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음'의 구조로 보는 것은 신약학자로서 쿨만이 제시한 신약교회의 구원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는 피력한다: "칭의론을 확립한 종교개혁에 대해서도 '칭의'가 구원의 완성이 아니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표현하기 위해 '성화'라는 단어를 쓴 의도는 이해하나 이름을 잘못 붙였다. '칭의의 현재 단계'라 하는 것이 보다 옳은 표현이며 바울의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이해되어야 한다."

필자는 칭의를 구원의 전(全) 단계인 칭의(과거), 성화(현재), 영화(미래)의 단계의 한 국면으로 본다. 칭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으로 획득되었기 때문에 칭의는 획득이라는 과거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고 성화의 단계 속에서 현재하고 있다. 김 교수가 칭의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다. 종교개혁 전통은 칭의를 단지 법정적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성화와 영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칭의는 일회적이며 선언적이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화의 열매를 맺는 구원의 과정 안으로 나아간다. 구원의 과정 안에서 칭의는 성화의 열매 속에 현재적이다. 그런데 김 교수처럼 성화를 칭의의 현재적 단계로 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일회적 성격의 칭의가 현재에서 반복된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칭의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성화 속에서 현재화된다. 그러므로 "칭의의 현재적 단계"라고 하는 것보다는 성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구원의 과정에서 칭의는 성화를 거쳐 영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그 단계 속에 현재해 있다. 그리고 칭의는 종말의 심판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서 나에게 현재적으로 전가(轉嫁)하는 선취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칭의를 전가하는 의가 나의 행위의 의가 아니라 전가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서 구원의 모든 단계, 처음이나 과정이나 심판에서나 동일한 의이기 때문이다.

IV. 칭의는 반복적이 아니라 단회적 사건, 성화는 반복적으로 종말까지 성장하는 구조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장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믿을 때 발생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를 향해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칭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미래의 죄들을 용서받을 법적 근거가 된다.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성화의 출발이다.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됨으로 주어지는 이중적인 은혜이다. 칭의는 단 한번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죄 사함으로 얻는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다. 칭의는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반복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한번 칭의를 선언한 자에게 다시 칭의를 확인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대신 그로 하여금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라고 부르신다. 성화는 성령 안에서 신자들이 칭의의 선한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서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롭다고 칭한 자를 동시에 성화로 인도하신다. '성화 없는 칭의'나 '칭의 없는 성화'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칭의를 얻는 자는 필연적으로 성화를 수반한다.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단 일회적으로 주어지며 성화를 통하여 그 내용이 풍부해지며 종말에 가서 완성되나 그 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의 칭의와 나중의 칭의는 동일한 칭의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轉嫁)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화는 죄인이었던 신자의 성화며 성화의 성장과 풍요는 신자의 품성의 변화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칭의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칭의는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칭의의 질(質)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종말이나 변함이 없다. 단지 성화와 영화에 의하여 칭의의 내용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음으로 풍성해 지는 것이다. 종말에 가서 비로소 유보된 칭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 주어진 칭의가 완성되고 재확인되는 것이다. 나의 행위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가된 의, 곧, 선취적으로 주어진 처음의 의가 완성되고 재확인되는 것이다.

V. 칭의가 먼저이고 다음이 성화라는 의미에서 칭의와 성화는 통합체

종교개혁적 전통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성화가 있고 다음에 칭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칭의가 있고 그 열매로서 성화가 수반된다. 전자가 로마 천주교의 칭의를 가리킨다며 후자는 루터가 발견한 어거스틴적 칭의다. 칭의가 먼저이고 다음에 칭의가 온다. 그 반대는 아니다. 성화가 먼저 있고 다음에 칭의가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나의 의가 칭의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로마가톨릭적 구원론으로 나아간다. 칭의가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 성화가 온다는 의미에서 "칭의와 윤리(성화)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종교개혁적 전통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칭의를 받은 자,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자기가 속한 나라의 법을 준행한다. 천국 백성의 열매를 맺는다. 김 교수는 피력한다: "칭의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순종'으로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바울의 요구는, 자신의 제자가 되어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한 예수의 부름에 상응한다," "바울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곧, 하나님 나라)의 틀 안에서 이해돼야 하는 칭의론이다.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자이므로,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로 이전된 자이므로, 이제 '믿음의 순종'을 해야 한다," "즉, 칭의론과 윤리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의 그의 명제들은 종교개혁적이다.

VI. 칭의는 구원의 전(全) 과정(칭의-성화-영화)의 과거적 단계로서 성화 속에 현재한다

종교개혁 전통에 의하면, 칭의는 하나님의 선언적·법적·단회적 사건이다. 칭의는 반복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시기 때문이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이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음을 뜻한다. 칭의는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동시에 현재적 사건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선고하실 판결이 현재의 우리에게 앞당겨 왔다. 구원은 근본적으로 미래에 속한 것이지만, 미래에서 다가오는 종말 심판의 하나님의 선언이 우리의 현재 속으로 침투하여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신자와 복음 전파자는 당당히 외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오늘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최덕성 교수가 잘 표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칭의는 현재완료형 사건이다.

전통적 칭의론, 예컨대,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신조, 도르트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등은 칭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근거한 단회적인 과거 사건으로 보았다. 17세기 청교도 칭의론도 최후 심판의 칭의 문제와 관련하여 칭의를 과거 칭의와 구분되는 제2의 칭의로 보지 않고 과거 칭의의 공개적인 확인으로 이해하였다(John Owe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in William Goold, The Works of John Owen  V [1850-53; Edinburgh: Banner of Truth, 1965-68], 159-60). 칭의는 그 자체로서 믿는 자에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난 구원 과정 속에서 과거의 사건이나 성화의 단계에서 지금 현재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 올 미래의 영광의 단계에서도 동일한 질로서 작동한다. 칭의의 의는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이기 때문이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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