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하나님의 비밀

2015년 8월 2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전병금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9~10절
설교문
백화점 왕으로 유명했던 존 워너메이커는 그의 많은 재산을 선한 사업에 쓰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한번은 자기가 기부한 돈이 중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여진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 보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는 중국의 어느 도시 외곡에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밭을 갈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워너메이커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한 청년이 소와 함께 멍에를 메고, 그 뒤에서 나이 많은 노인이 쟁기를 끄는 것이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그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그들에게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얼마 전까지 소가 두 마리 있어서 쟁기를 끌었는데, 지난 주에 한 마리를 팔았습니다. 우리 부자가 다니는 교회는 그동안 예배당도 없이 예배를 드렸는데, 누가 기부를 해서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지금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헌금을 보태려고 했지만 돈이 없어서 염려하다가, 내 아들이 소 한 마리를 팔아서 헌금을 하자고 하더군요. 대신 자기가 소와 함께 멍에를 메고 일을 하겠다구요. 그래서 아들 말대로 소는 팔아서 헌금을 하고 이렇게 일하고 있지요.”
이 말을 들은 워너메이커는 감탄을 하면서 “오 하나님! 이런 충성스런 청년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나로 하여금 이렇게 기쁨으로 희생하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청년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아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만이 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청년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에 기쁨이 넘쳐 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비밀이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무런 희생이나 헌신도 없이, 기쁨도 없이 그러저럭 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유대인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신앙의 비밀로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는데,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택되어 본토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과 이집트를 떠돌다가 이집트에서 정착하였으나, 거기서 그만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꿈에 그리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축복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받은 민족입니다. 이 놀라운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비밀을 들은 민족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기에 그들은 오직 자기들만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셨다고 말합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엡 1:9).
여기에서 “그 뜻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신 그 크신 은혜를 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건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던 가장 큰 비밀이요, 이것을 세상에 계시하신 것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사건이요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 먼저 이 “비밀”은 단순히 알려지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의 비밀이 아니라, 오랫동안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비밀을 깨달은 자들에게는 더 이상 감추어진 비밀이 아닌 것입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하지만,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감추어진 비밀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을 기념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교인이나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참여하거나 이상하게 볼 뿐입니다. 이때의 성찬식이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비밀’인 것입니다. 
2) 그 다음 바울이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라고 할 때 그 “비밀”은 그 비밀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까지도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전까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만 선택하셨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유대인만 선택해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을 택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평생에 걸쳐 이방선교를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비밀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다가, 여전히 ‘유대인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의 손에 의해 수없이 죽음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에 ‘할례’가 큰 문제가 되었던 것도, 유대인의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증표인 ‘할례’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이 다른 이방인에게도 개방될 수 있느냐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예전에는 선민사상에 빠져 있던 전통 유대인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진리를 깨닫고, 동족의 핍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예수 십자가의 구원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 및 초대교회의 헌신적인 선교와 희생을 통해, 오늘날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구주라는 하나님의 비밀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우리에게까지 드러났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그 다음 “하나님의 비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님 안에서 서로 하나되어 조화를 이루고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인간도 분열되었고, 인간과 인간 사이도 분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도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향해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과 명예와 세상의 쾌락과 안일을 꾀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격의 분열로 나타납니다. 
또한, 인간 세상은 분열과 갈등의 연속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투쟁과 긴장과 전쟁과 증오와 분열이 난무합니다. 그 어디에도 평화는 없습니다. 우리 한반도만 하더라도 남북이 대치된 지 70여 년이 되었지만, 화해와 통일의 길에 좀처럼 들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넘쳐나는 지식과 물질이 분열과 분쟁을 더욱 부추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또한 자연과 분열되어 있습니다. 자연파괴, 환경훼손, 생태계 교란, 무분별한 도축 등은 이러한 분열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로마서에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고 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분열이 야기한 비극을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지구 생태계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인류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분열로 말미암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머지않아 모든 인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 그리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과의 화해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될 날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인간 개인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 되게 하고, 온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설명하면서 ‘역사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 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역사가나 사상가들은 역사를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인간적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의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고 하면서 오직 주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인간의 뜻에 따라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처럼,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인하여 전쟁과 인권말살 같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언젠가 하나님의 뜻에 제 갈길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는 희망을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이 놀라운 새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로 이뤄진다는 것이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동참해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우리의 역할은 먼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의를 펼쳐 나가야 합니다. 
그 일은 교회 안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 땅 구석구석과, 온 우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울처럼 담대히 나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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