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동교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

2015년 3월 8일 사순절 주일예배 설교자 한성수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 53:1-6  2015. 3. 15
설교문
▲강동교회 한성수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이스라엘은 주전 587년에 남쪽에 남아 있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함으로 주권국가로서의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주전 142년경에 독립을 했지만,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기원전 31년 로마에게 다시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리고나서, 200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후,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가 독립을 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무려 2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떠돌다가, 구약에서 가나안이라고 불리웠던 팔레스타인 땅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는, 혈통적인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사라지고, 오직 믿음으로 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만은, 역사적인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은 이렇게 길고도 긴 간고의 긴 세월을 걸어왔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고난의 상황 속에서 주어진 예언의 말씀입니다.세상을 만드셨다고 믿고 고백하였던, 전지전능하신 신인,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한 민족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부터, 하나님의 전인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불타서 무너지고,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채 사슬에 묶여 포로로 잡혀가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이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는데, 왜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이 백성을 이처럼 처절하게 망가지고 부서지도록 내버려 두셨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힘이 없어서 멸망당하였습니까? 무기가 부족하고 군량미가 부족해서 망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령 무기가 부족하고 양식이 떨어졌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전쟁의 주인이시기에, 하나님이 도우시고 개입하시면 어떠한 전쟁도 이겼던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드온은 불과 300명의 병사로 메뚜기 떼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디안 족속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죄였습니다. 
이사야 50:1-2
“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하나님은 이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저들이 포로로 팔렸다고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죄악의 길을 떠나서 내게로 오라고 소리쳤건만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손에 짧아서, 너희를 건질 능력이 없어서, 너희를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도록 버려뒀겠느냐고 묻습니다. 너희들의 죄악과 불순종이 나를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의 원인은 전적으로 죄악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왜 우리는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입니까? 그것은, 메시야가 고난 받는 모습으로 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이, 힘과 능력의 부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저들의 죄악에 있었기 때문에, 이 백성이 다시 일서서기 위해서는, 멸망의 원인이었던 죄악을 소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탕자의 비유를 보았는데, 둘째아들의 실패의 원인은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허랑방탕한 저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러니 방탕한 삶의 자세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억만금을 손에 쥐어 줘도 그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오늘 본문의 고난 받는 종의 기사는 이스라엘의 죄악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과연 하나님께서 친히 보낸 종이 맞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 메시야로 오실 그의 모습은 볼품이 없고, 초라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보내신 종은  백마탄 기사도 아니요, 구척장신의 용사도 아니였습니다. 그는 힘을 가지고 온자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소멸시키기 위해서 온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볼품없는 종을 보내시니, 이사야 53장 1절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메시야는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당당한 풍채도 없었으니,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수많은 간고를 겪었기에 사람들은 저들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버림을 당한다음 그는 창에 찔리고 채찍에 맞는 징벌을 당하는 고난을 겪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양처럼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종이 창에 찔리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허물이 낫게 되고, 결국 그가 양처럼 죽음으로서 우리의 죄악이 용서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본문을 읽어 봅시다.
이사야 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말해 이스라엘을 구할 메시야로 오실 자가, 저렇게 힘없고 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고난을 당하다가 죽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놀랍고도 위대한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후, 500년이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에 증언된 그 모습 그대로 오셔서, 참혹한 고난을 당하고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는 사순절 넷째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나의 죄악과 허물을 돌아보는 영적인 성찰과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인이었음을 고백하는 눈물의 회개 없이는 사순절의 의미는 없습니다. 나의 허물과 죄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예수님을 피흘림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죄인에 불과 합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의 모습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스스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대신 보내셔서 창과 채찍으로 매 맞게 하신 것은, 인간의 허물을 인간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전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식의 잘못을 두고, 아비가 자신의 종아리를 직접 때리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입니다. 자식의 잘못을 두고서, 자신의 종아리를 스스로 때리며, 자식이 바로 되기를 바라는 부모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로 옷을 갈아 입고서 인간의 땅에 오셔서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죄악에 빠진 아들이 참되고 의로운 아들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종아리를 매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의 허물과 죄악을 회개하고 성찰하는 절기가 사순절인 것입니다.
이어서 사순절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절기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눅 9:22-24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 바 되어, 죽임을 당하여 제삼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른 다는 것은, 세상의 시험과 유혹의 포로된 내 삶이 해방 받고 건짐을 받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포로된 원인이 서두에서 살펴보았듯이, 불순종의 죄악이었습니다. 불순종의 죄악을 불태워 없애지 않고서는 우리는 세상의 포로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물질로도 권세로도 우리를 시험과 유혹의 사슬에서 구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나의 옛사람의 허물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탐욕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릴 때에, 주님께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났듯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합니다. 
고후 4:10-12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
바울이, 항상 예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지겠다는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내 삶속에서 실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다시 시신 것처럼 나도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저 바울처럼, 날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죄악에 대해서 날마다 죽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탐욕과 시기와 이기심과 불의에 대해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십자가에 나의 옛사람의 허물과 죄악을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절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장로를 선출하는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장로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사순절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부족하고 허물많은 삶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는 자, 다시말해 영적으로 겸손한 자가 장로의 자격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는 자입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악하고 추하고 몹쓸 것들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해마다 맞이하는 이 은혜로운 사순절 절기를 의미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채찍맞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절기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나도 기꺼이 지겠다고 다짐하며, 날마다 예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짐으로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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