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남교회] 내 뿔을 높여주신 하나님

2014년 11월 16일 주일예배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사무엘상 2장 1절)
설교문
어느 교회에 어떤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볼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부인 권사님과도 사이가 좋았고, 교회 봉사에도 열심이었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항상 기뻐하였습니다. 그런 장로님을 보면서 교인들은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젊은 성도가 그 장로님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과거에는 그 장로님도 불평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직장에 가서도 상사들이 하는 것이 꼴보기 싫었고, 교회에서도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게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가서나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의 아들이 중학생이었을 때, 그런 장로님의 삶의 태도가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춘기였던 중학생 아들은 매사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집에 오면 자기 방의 문을 쾅 닫고 들아가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하도 화가 나서 아들의 방문을 강제로 열고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해서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소리치며 혼냈는데, 그만 그 아들이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로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든지 가슴에서 불이 타는 것 같았고, ‘이놈이 들어오기만 하면 다리를 부러뜨려놓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얼마 후에 가출했던 아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화를 내면서 회초리를 들었는데, 아들은 적반하장으로 반항을 하면서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게 뭐냐?”고 소리 지르고는 다시 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황당해서 그날 밤에 교회에 가서 실컷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놈이 왜 이 모양입니까? 우리 기독교 가문에 어떻게 저런 놈이 나옵니까?’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이 있었습니다. ‘네 아들이 그 모양이니까 마음이 아프냐? 마음이 괴롭냐? 나는 너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너는 명색이 교회 장로라고 하면서, 언제 믿음으로 살면서 믿음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살았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동안 무지하고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하고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자기 아들도 자기를 본받아서 그 모양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장로님은 모든 일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불평불만은 사라지고, 대신 감사 제목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장로님의 변화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감사”가 빠지면 그 자리는 어김없이 “불평불만”이 차지하고 맙니다. 조셉 스토웰은 불평은 불신앙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평은 항상 믿음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잊어버리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적 환경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불만을 먼저 합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이, 불평불만만 가득한 사람은 불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말이 더 많습니까? 불평불만의 말이 더 많습니까? 혹시라도 감사대신 불평불만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그로 말미암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식구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받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11월 셋째주에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감사’를 통해,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한결같이 감사의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까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여자의 권위를 보장해주었는데, 한나는 오랫동안 자녀가 없어서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첩인 브닌나는 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기고만장한 브닌나는 대놓고 한나를 무시하고 한나의 속을 긁어 놓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만약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면, 한나의 처지는 처량하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일년에 한 번씩 올라가는 실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매달려 드디어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한나의 감사기도입니다.
1절에 보면, 한나가 기도하면서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그것이 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의 모든 기쁨과 감사의 제목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로 성전에서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무엘이 출생함으로써,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과 슬픔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금이 있는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은 그 어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은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나는 또한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라고 했습니다. “뿔이 높아졌다”는 말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나는 남편인 엘가나의 본부인이었는데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첩인 브닌나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도무지 한나는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낳고는 본부인의 명예와 권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의 뿔이 높아진 것입니다. 
시편 92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대적자를 흩으시고 자신을 높여 주셨다는 것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시 92:10)
한 때,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키우던 목동 다윗도 들판에서 양이나 치던 보잘 것 없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후,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그의 뿔이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의 뿔을 높여주십니다.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시편 148:14)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뿔 또한 높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은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첩인 브닌나가 아이를 낳은 후, 자기를 격분케 했으나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해도 참고, 분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낳고 부터는 입이 열렸습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브닌나 앞에서 뿐 아니라 그 누구 앞에서도 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울하고 분해도 참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피동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여 주셔서 우리의 입을 열 수 있도록 하십니다. 2장 7-8절에 나오는 한나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셔서” 당당하게 그 입을 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당당하게 입을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한나는 이 모든 기쁨과 감격이 궁극적으로 “주의 구원”에 근거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그런데 이 '구원'은 일차적으로는 한나의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개인적인 감사함으로 머무르지 않고,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아들인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실로 성전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도록 했습니다. 젖을 떼는 때가 보통 3년이라고 하면,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된 아들을 성전에 데리고 가서 드렸던 것입니다.
앞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아기를 달라고 기도할 때,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라고 서원하였는데, 자신의 서원대로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여러 가지로 서원하지만, 막상 서원한대로 이루어지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나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진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공항에서 한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느라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과자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과자만 냉큼 받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다시 타이르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여행자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자, 아이의 어머니는 공손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감사의 말을 배운다면, 앞으로 더 올바르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인입니다. 한나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 사무엘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인 다윗을 세움으로써 인류 구원의 역사에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감사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2014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뿔이 높아졌으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입이 열렸습니다. 감사주일을 맞아, 하나님께 더욱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의 이름을 만방에 전파하는데 앞서 나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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