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유교 문화 한국, 전승이란 측면에선 여성성 강해”

[인터뷰] 스위스 마가비뤼상 수상자 정미현 교수(상)

▲올해 10월에 있을 스위스 마가비뤼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미현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교목)를 지난 3일 연세대 교정에서 만났다. ⓒ베리타스

“이 상(償)은 제가 잘했다기 보다는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장 10월 수상에 앞서 강연에 워크샵 준비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비서구권, 제3세계 여성신학자로서는 최초다. 지난 3일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정미현 교수(49)는 스위스 마가뷔리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을 이 같이 밝혔다.
 
마가뷔리상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장(지금의 의장)을 지낸 독일 태생의 스위스 여성신학자 마가뷔리(Marga Bührig·1915~2002)를 기념하고자 지난 1999년 처음 제정됐다. 이 상이 제정된 이후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들은 모두 북미 유럽, 소위 백인 여성신학자들 뿐이었다. 
 
그러나 올해 최초로 이 같은 흐름을 깨고, 내로라하는 북미 유럽 여성신학자들을 제친 정 교수는 당당히 여성신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수상자 선정 배경이 궁금해졌다. 아니, 그에 앞서 비서구권 신학자로서 마가뷔리상 수상 의의가 더 궁금했다. 
 
그녀는 마가비뤼의 활동을 회고하며, 수상의 의의를 곱씹었다. “여성으로서는 아마 최초로 WCC 총회장을 지내셨던 분으로 알고 있어요. 1999년도에 이 분이 세계개혁교회협의회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이 분이 제일 관심했던 영역은 여성운동, 여성신학의 확대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교회 내 여성 참여비율 등에 관한 문제에 역점을 두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마가뷔리는 특히 유럽 내에서 사회적인 학문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며 사회 중요 이슈들을 놓고 토론하는 장을 여는데 큰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그와 유사한 활동을 벌인 분을 꼽는다면 크리스천 아카데미 운동을 하셨던 故강원용 목사님이 아닐까 생객해 본다"고 말했다.
 
이번에 마가뷔리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 교수 역시 여성신학을 하면서 사회적 아카데미 운동에 열을 올리며 꾸준한 활동을 벌여왔다. 작년에는 그런 활동들의 열매로 ‘물과 쌀’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의 연구 공헌을 인정 받았기에 그녀가 마가뷔리상의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은 여전히 한국에 관해서 잘 몰라요. 한국 신학에 관련된 자료는 더더욱 찾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고요. 그래서 이런 전반적인 것들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동기에서 집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때가 2002년도 였고, 그 사이 전 스위스에서 9년 동안 국제 기구에서 활동하며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대륙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거기서 얻은 경험들 그리고 유럽의 한 복판에서 논의되는 신학적인 내용들을 고찰하면서 집필 활동을 이어갔어요.”
 
집필 방법은 조직신학적 분류를 차용했다. 책은 1부, 2부로 나뉘며, 1부에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식의 조직신학적 구도로 전개되며, 2부에는 각 지역 특색에 따른 비교 연구를 통해 한국만의 독특한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했다.
 
“책 내용들 중 마지막에 썼던 것은 구두전승하고 문서전승을 비교 연구를 하는데 그것을 젠더(gender) 문제와 관련을 지었어요. 문서전승은 주로 남성성에 가깝고요. 말로 풀어내는 구두전승은 여성성에 가깝죠.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로도 비교가 가능해요. 지구 남반구가 구두전승에 가깝다면, 북반구는 기술문화, 즉 문서전승에 치중되어 있어요.”
 
▲정미현 교수는 유교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가 역설적이게도 여성성을 나타내는 구두전승에 가깝다는 견해를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앞서 그녀는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놓고, 성문화된 율법을 넘어서는 ‘말’의 힘을 보여줬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베리타스
남성성이 강한 전통을 지닌 기독교·유대교 문화권에서 문서전승이 아닌, 구두전승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오히려 기록 문화, 즉 문서전승의 요체인 성서에 호소하며, 성문화된 율법을 뛰어넘는 ‘말의 힘’을 보여준 예수의 행적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한 여인을 놓고 예수께서 죄 없는 사람이 나와서 돌로 치라고 하셨잖아요. 그 때 예수께서 기록된 율법을 굉장히 파격적으로 깨는 말씀을 하고 있거든요.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기록된 문화에 얽매여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 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잘 풀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것이거든요. 이곳에서 말의 힘을 우리가 목격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정 교수는 문서전승을 폐기하자는 주장을 펴지는 않았다. 그녀는 "두 가지의 가치가 같이 공존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록 문화가 갖고 있는 힘도 있지만 구술 문화가 갖는 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가? 이게 곧 젠더 문제로도 이어지는데 남성성의 좋은 것과 여성성의 좋은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남성성과 건강한 여성성을 같이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유교 문화와 가부장제 성격이 짙은 우리나라는 그러면 문서전승에 가까울까? 구두전승에 가까울까? 역설적이게도 정 교수는 우리나라가 젠더로 말하자면 여성성에 해당하는 구두전승에 가깝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를 보면 말로 풀어내지 않으면 먹히질 않아요. 구두전승이 강하다는 것이거든요. 서부 유럽에서는 아주 간단한 인사말 조차 써서 그것을 읽는 게 정식이랍니다. 설교단도 보면 목회자들이 이성에 호소하고 감성의 차원으로 설교 메시지를 끌고 나가는 경우는 보기 드물죠. 감성에 먼저 호소하는 경향이 짙은데 왜냐하면 그런 문화에 익숙한 청중들의 반응을,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자신이 저술한 책이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저작권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녀의 책에서 문서전승과 구두전승 비교 연구와 관련해 저작권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구 북반구 사람들이 남반구 지역을 탐색하면서 토착민 여성들이 갖고 있는 삶의 지혜들을 모조리 조사해서 성문화 시킨 뒤 자기네들의 지적 재산권을 보장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정 교수는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해적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구두전승이 좋은 점이 있는데 이런 문제들 때문에 실제로 (법률적 보호를 받으며)인정되느냐. 참 그렇질 않아서 많이 빼앗기고 있는 현실이다"라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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