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재순 칼럼] 2013년 씨알다짐과 선언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씨알 다짐

다석 유영모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자신을 불살라 제사 지내는 심정으로 사셨습니다. 숨을 불태우고 밥을 불태우고 피를 불태우고 생각을 불태우고 뜻을 불태우셨습니다. 몸과 맘과 얼을 불태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셨습니다. 사나운 욕심과 거친 감정과 그른 생각을 남김없이 다 태우셔서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의 길을 뚜렷이 밝히셨습니다. 못나고 못된 ‘나’를 불태워 제사 지내고 ‘큰 나’가 되어, 우리가 함께 서로 살리며 가야 할 길을 환히 비추는 하늘의 북극성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선생님 가신 길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 적습니다. 모두 제 욕심과 제 감정과 제 생각에 파묻혀 사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돈벌이와 출세의 길을 가르칠 뿐 사람 되는 길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돈과 출세와 성공이 너무 중요해서 참과 사랑은 보이지 않고 정의와 평화는 사라졌습니다. 젊은이는 꿈을 잃고 늙은이는 보람을 잃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많은데 학교와 교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데 종교도 사회도 변할 줄을 모릅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에 빠졌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저렇게 밝고 지식과 정보는 이렇게 넘쳐나는데,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을 탓하고 있을 때는 지난 것 같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길은 부족하고 못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불살라 제사 지내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선생님처럼 우리 자신을 불사르며 하늘을 우러러 살겠습니다. 우리 욕심을 불사르고 거친 감정을 불태우고 생각과 뜻을 사름으로써 작은 등불을 켜겠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속에서 작은 등불을 켜도록 깨우고 부르겠습니다. 

씨알선언

씨알 함석헌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사심을 버리고 전체의 자리에서 뜨거운 불꽃으로 사셨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버렸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서슬이 퍼런 군사독재 권력 앞에서도 마치 권력과 총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돈과 권세가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불의한 부자와 세도가들을 마음껏 야단 치셨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 남북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의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바람처럼 자유롭게 참을 말하고 의롭게 행동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민족의 참된 얼과 혼을 드러내고 민족과 인류 전체가 하나로 되는 길을 밝히셨습니다. 민족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며 이 나라를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이끌려고 혼신을 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정성스럽고 절절하게 몸과 맘을 녹여서 민족평화의 길을 가르치셨는데 남과 북은 불신과 갈등, 대립과 적대의 늪에 빠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심 없이 참 나로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선생님은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셨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글을 보면 참 나가 되고 전체의 자리에 이르는 길이 환히 보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고 아쉬운 것은 ‘참 나’이고 전체의 자리입니다. 참 나가 빠진 행동과 말은 감동이 없고 전체의 자리를 잃은 생각과 주장은 갈등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참 나로 사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서 바람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말씀하셨고, 누구보다 낮은 자리에서 물처럼 겸허하고 부드럽게 작은 씨알로 사셨습니다. 

우리도 선생님처럼 사심 없이 참 나로 살기를 바랍니다. 전체의 자리에서 전체의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참 나가 되기 위해서 나의 사나운 욕심과 거친 감정과 그릇된 생각을 참회하고, 전체의 자리에서 불의한 세력과 풍조를 준엄하게 꾸짖고 다른 씨알들에 대해서는 물처럼 겸허하고 낮아지겠습니다. 참 나로서 전체의 자리에 서면 우리가 서로 남이 아니고, 나와 무관한 일은 없습니다. 참과 사랑,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하나로 되는 길을 찾고 그 길로 가겠습니다. 나를 버리고 비워서 서로 살리고 더불어 사는 길로 가겠습니다. 남북의 불신과 대립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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